[스페셜 리포트] 특집 5부작 인터뷰 ‘나와 디지털’_③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만화가)

2014/12/17 by 삼성전자
공유 레이어 열기/닫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난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운 좋은 세대’ 내가 20년 넘게 삼성 제품만 쓰는 이유는…”

이원복 교수가 ‘먼나라 이웃나라’ 들고 웃고 있는 사진입니다.▲이원복 교수의 작업실 책상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혼재된 공간이다. 한쪽에선 연필과 종이를 활용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다른 쪽에선 PC 검색으로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얻는다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68)는 자신을 “인류 역사상 딱 한 번 존재한 ‘운 좋은 세대’”라고 표현한다. “짚신부터 발리(BALLY) 구두까지 신어본 사람”이자 “농경·산업·정보화사회를 모두 겪은 세대”란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의 가파른 경제 발전 속도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인 동시에 급변하는 문명사적 시대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비유다. 1946년생으로 일흔을 목전에 둔 나이이지만 그는 소위 ‘디맹(디지털 맹인)’과 거리가 멀다. 스스로 “디지털 혁명의 최대 수혜자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할 정도다. ‘먼나라 이웃나라’로 대표되는 이 교수의 학습만화 재료는 그가 전 세계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며 광속으로 얻은 것들이다. 그는 수시로 캐나다에 있는 가족과 실시간 화상 채팅을 즐기고 제자들과 ‘카톡(카카오톡) 대화’를 나눈다.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며 껄껄 웃는 이원복 교수를 삼성투모로우가 만났다. 특유의 유쾌한 입담을 살리기 위해 그의 말투를 가급적 그대로 옮긴다.  

 

‘앵그리버드’ 하다 아내한테 혼나기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이원복 교수의 작업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혼재된 공간이다. 널찍한 기역(ㄱ)자 책상을 반으로 나눈 후 한쪽에선 8절 종이를 놓고 연필과 펜으로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다. 한 글자 한 글자, 선 하나 선 둘….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그만의 ‘아날로그 영역’이다. 나머지 책상 반쪽에선 PC를 이용해 전 세계 뉴스를 실시간으로 찾아보고 집필에 필요한 자료도 검색한다. 현지 답사로 얻은 자료를 기반으로 하되, 이를 확장하려면 인터넷 검색은 필수다. 말 그대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시너지’가 제대로 창출되는 공간인 셈이다. "요즘은 ‘가로세로 세계사’의 ‘오스만투르크’ 편을 쓰고 있어요. 작업 과정? 종이에 연필로 먼저 스케치를 한 후 펜으로 정교하게 그림을 완성하지. 그 다음은 컴퓨터 작업이에요. 스캔해 넘기면 출판사에서 색을 입혀. 예전엔 일일이 수작업으로 했는데 세상 많이 좋아졌지.”(웃음)

이원복 교수가 지구본을 들고 있는 사진입니다.

▲이원복 교수는 자신을 가리켜 “유사 이래 딱 하나밖에 없을 세대”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 전형적 농촌사회에서부터 최첨단 디지털 시대까지 단숨에 온 것”이라며 “그 덕에 모든 시절을 두루 누렸으니 난 운이 좋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뷰 전, 그에게 ‘나와 디지털’을 주제로 인터뷰 섭외 전화를 걸었을 때 “주제가 재미있다”며 “(주제에 대해) 할 말 많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이원복 교수와 디지털, 직접적 공통분모가 없어 보였던 터라 그의 적극적 호응은 다소 의외였다. “특히 내가 이 주제에 대해 할 말이 많아. 우리 세대가 인류 역사에 딱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세대거든. 인류 문명 변천 과정인 농경시대와 산업화시대, 정보화시대를 다 겪었지. 한 인생에서 이걸 다 겪은 세대가 우리밖에 없어요. 유년기엔 농경시대, 중·장년기엔 산업화시대, 지금은 정보화시대를 살고 있으니…. 우리 세대의 존재 자체가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에밖에 없어요. 동년배 일본인은 산업화시대부터 겪었을 테고 후진국 사람들은 아직 산업화시대를 못 벗어났어. 우리나라 발전 속도가 유례 없이 빨랐고, 그 덕에 전형적 농촌사회에서 최첨단 디지털 시대까지 순식간에 온 거예요.” 대전이 고향인 그는 “또래 중엔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다”며 웃었다. “난 그래도 나은 편이지. 나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내 나이 분들 중엔 촌구석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며 수렵시대를 경험한 사람도 있다니까.” 그는 얼리어답터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디맹도 아니다. 젊은이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기본 기능은 웬만큼 다 쓸 줄 안다. 사진 찍어 카톡에 올리고 유행하는 영상을 내려받아 챙겨 보는 건 기본이다. 얼마 전엔 갤럭시 탭에서 게임 ‘앵그리버드’ 시리즈를 완전히 정복했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멈출 수 없더라고. 집사람한테 핀잔 좀 들었지.”(웃음)  

 

“나야말로 디지털 문명의 최대 수혜자”

이 교수는 “나야말로 디지털 덕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이라고 말한다. “1990년대 초, 주간조선에 ‘현대문명진단’이란 주제의 만화를 연재했어요. 그때만 해도 신선한 자료를 얻으려 독일·일본 일간지를 구독했지. 그런데 꼭 하루씩 배달이 늦더라고. 비행기로 배달됐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어요. 그런데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 뉴스들을 방안에서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게 된 거야. 와! 하느님이 내게 선물 꾸러미를 한아름 안긴 기분이었어요.” 정보 획득 수단을 ‘종이 신문’에서 ‘온라인 미디어’로 바꾼 이후 이 교수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우선 해외 미디어를 훨씬 더 많이 접하게 됐다. 예전엔 구하기 힘들어 두 종(種)밖에 못 봤지만 지금은 하루 평균 네댓 개의 외국 신문을 본다. 자연스레 국제 정세를 읽는 시각이 넓어졌다. 동일 이슈에 대한 국가별·매체별 취급 방향과 뉴스 선별 기준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한국 신문의 최대 약점은 국제 정보가 부실하다는 거예요. 강아지가 사람 문 것(처럼 뻔한 뉴스)까지 다루면서 정작 외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진 잘 파악을 못해. 세계에서 가장 글로벌한 의식 구조를 가진 나라는 독일이에요. 저녁 8시 메인 뉴스를 보면 내용의 90%가 외신이거든. 내 책과 다른 책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주요 정보의 출처가 유럽이란 거예요. 반면, 우리나라 책은 대부분 미국이나 일본에서 자료를 취해요. 미국은 국제 정세를 많이 다루긴 하지만 자국 위주로 편집해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뉴스가 편중되게 마련이지.”

이원복 교수가 크게 웃고 있는 사진입니다.▲이원복 교수는 자신을 “디지털 혁명의 최대 수혜자”라고 말한다. 외국 일간지를 정기 구독하다 인터넷 덕에 세계 각국 신문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게 된 변화를 두고 그는 “신이 내게 준 선물”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혁명이 몰고 온 변화 하나, 앎의 평준화 “만인이 아는 김태희 애인, 아무도 모르는 몽테스키외”

이원복 교수에게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은 ‘판단’과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관찰’과 ‘적응’의 대상이다. ‘벌어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게 순리이고 섣부른 가치 판단은 유보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모바일이 이끄는 오늘날의 디지털 혁명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관찰한다. 수십 년간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덕에 디지털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 간 차이점도 확연히 자각하고 있다. 그가 꼽는 디지털 혁명의 최대 변화는 ‘앎의 평준화’다. “디지털과 모바일은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어요. 무엇보다 정보를 기억할 필요가 없게 됐지. 언제 어디서나 검색하면 다 나오니 외울 필요가 없어진 거예요. 예전엔 다들 조선 왕 이름을 줄줄 다 외웠잖아, “태정태세문단세…” 하면서. 그런데 요즘엔 “태정태…” 하다 모르면 바로 검색해서 찾아요. 두뇌 구조가 단순해지는 거지. 뇌 모양도 바뀐다잖아.” 이 교수에 따르면 요즘 대학생은 ‘앎’의 차이가 거의 없다. “아는 건 다 알고 모르는 건 다 몰라요. 김태희 애인이 비(정지훈)란 건 다 알면서 몽테스키외가 한 말은 아무도 모르잖아. 왜 그런지 알아요? 지식과 정보의 원천이 TV와 스마트폰뿐이거든. 책들을 안 봐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지하철에서 책 보는 사람 있어요? 보는 사람이 희귀 동물이지. 우리 시대만 해도 내가 아는 걸 친구는 모르고 친구가 아는 건 내가 몰랐어요. 그런데 이젠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다 같아져버렸어요.”  

 

디지털 혁명이 몰고 온 변화 둘, 감성의 시대 "만사가 오락… 감각·감성에 솔직해진 사람들"

디지털 혁명은 ‘오락거리의 다양화’를 몰고 왔다. 책과 TV, 영화 등으로 국한돼 있던 오락거리가 모바일 영역에 편입되면서 ‘무한 팽창’ 되고 있는 것. 세계 각국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면서 게임은 점점 역동적으로 진화했다. 인터넷 공간에선 일상 대화조차 새로운 문법을 등에 업고 어엿한 하나의 오락거리로 자리 잡았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추구하는 건 대개 ‘즐거움’이다. 디지털 혁명의 두 번째 변화로 이 교수는 “감각과 감성이 추앙 받는 시대가 된 것”을 꼽았다. “모바일 시대의 가장 좋은 점은 즐거움을 추구할 소재가 많아졌다는 거예요. 재밌는 동영상이며 게임, 앱 따위가 얼마나 많아. 예전엔 이성적, 사유적 삶을 좇아 감성을 억제하고 살던 사람들이 이젠 자신의 감각과 감성이 움직이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요. 부작용? 당연히 많지. 하지만 해석하기 나름이에요. 기성 세대 눈에 요즘 세대는 ‘책이라곤 안 읽고 단순하며 무지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이죠. 반대로 요즘 친구들이 볼 땐 기성 세대가 따분할 거예요. ‘저 보수적인 구닥다리들 왜 저러고 사나’ 하면서.(웃음) 함부로 어느 게 좋다, 나쁘다 단정 지을 순 없어요. 그저 달라진 것일 뿐. 차이를 인정해야 할 것 같아.”  

 

일본의 쇠락과 한국의 도약, 둘 다 원인은 인터넷

이원복 교수는 40년 넘게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사(史)를 연구해 왔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어서 과거를 보면 미래를 읽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 역사에 관한 한 거시적 안목을 지닌 그는 미래 사회를 어떻게 내다보고 있을까? 그는 “그걸 알면 내가 일찌감치 미래학자가 됐을 것”이라며 겸연쩍게 웃으면서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선입견은 얼마 안 가 전부 깨질 거예요. 이를테면 ‘프랑스는 예술과 낭만의 도시’ 같은 명제 말이에요. 실제로 오늘날 프랑스는 극우파가 득세하며 ‘반(反)개방 반(反)글로벌’ 추세로 가고 있죠. 요즘 세계 정세를 가만히 살펴보면 ‘가라앉는 나라’와 ‘떠오르는 나라’는 저마다의 특징이 있어. 전자를 대표하는 국가는 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이고 후자를 대표하는 국가는 독일·오스트리아·중국·한국이에요. 공통점이 뭔지 알겠어요? 앞의 국가들은 식민지 착취의 주체였던 반면, 뒤쪽 국가들은 하나같이 식민지 착취를 당했거나 전쟁에서 패배했어요. 식민 착취로 흥한 나라는 경제 구조 자체가 착취 구조예요, 적게 주고 많이 받는. 하지만 식민 착취 피해국은 출발부터가 교환 구조야. 그런데 현대 사회는 기본적으로 착취가 불가능한 구조로 움직이고 있거든. 인터넷이 발달하며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 착취를 하려야 할 수 없는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있는 거지.”

이원본 교수가 갤럭시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사진입니다.▲이원복 교수는 자타 공인 ‘삼성전자 마니아’다. ‘갤럭시’ 브랜드로 스마트폰이 출시되자마자 구매하기 시작해 갤럭시 S·S3·S5로 잇따라 갈아탔고 노트·탭 등 다른 갤럭시 제품도 두루 사용해 왔다. 지난 2002년 삼성전자가 63형 PDP TV를 출시했을 땐 1800만 원을 주고 구입하기도 했다

 

내가 20년째 삼성전자 제품만 고집하는 이유

이원복 교수가 지금 쓰고 있는 스마트폰은 갤럭시 S5다. 그 전엔 S3를, 또 그 전엔 S를 썼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엔 ‘애니콜’ 브랜드 제품을 사용했다. 갤럭시 노트와 갤럭시 탭도 종종 쓴다. 지난 2002년 삼성전자가 1800만 원짜리 63형 PDP TV를 출시했을 땐 그 길로 달려가 구입하기도 했다. 그가 삼성 제품만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애국심이지. 삼성전자는 우리가 낳은 ‘글로벌 월드 베스트 기업’이잖아요. 실제로 삼성 덕분에 우리나라 국가 이미지가 굉장히 좋아지기도 했고.” 사실 삼성을 향한 이 교수의 애정과 신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990년 ‘자본주의 공산주의’ 만화를 쓸 때 있었던 일이에요. 사회주의 국가도 안 가보고 어떻게 책을 쓸 수 있겠어. 떨리는 마음으로 모스크바를 찾았지. 당시만 해도 공산주의 국가는 아무나 못 가는 곳이었어요. 출국 전 안기부(지금의 국정원)에서 교육을 받고 일명 ‘연좌제 검사’도 받았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모스크바공항에 떨어졌는데 세상에, 모든 카트마다 삼성 로고가 떡하니 찍혀 있는 거야. 그때 깨달았죠. ‘기업은 이렇게 발빠른 조직이구나, 삼성은 이 전쟁에서 엄청 앞서가고 있구나!’ 그때부터 친(親)기업, 친(親)삼성이 됐어요.” 삼성과의 특별한 인연도 그의 ‘삼성 사랑’에 한몫했다. 1993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일명 ‘신(新)경영’을 선언하며 개혁의 필요성과 변화 방향이 담긴 교본을 만화 형태로 만들어 임직원과 공유하게 했다. 당시 이 교본의 집필 책임을 맡은 게 이원복 교수였다. “그 작업을 진행하며 정말 여러 번 감탄했어요. 지금껏 기억나는 내용도 많지.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임원들에게 패션쇼 관람을 지시한 부분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전자제품이 당장은 기능 경쟁인 듯 보이지만 기능으로 차별화하긴 어렵기 때문에 종국엔 ‘디자인 싸움’으로 간다는 거야. 그걸 이미 20여 년 전에 꿰뚫어본 거예요.”

이원복 교수가 갤럭시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입니다.▲1993년 삼성의 ‘신경영’을 소재로 ‘나부터 변하자’란 제목의 만화를 제작했던 이원복 교수는 21년 전과 지금의 위기감이 닮은꼴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위기는 장수 기업의 숙명”이라며 “이 시기를 잘 극복하면 훗날 더 큰 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다시 한 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라

이원복 교수의 눈에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삼성전자와 2014년의 삼성전자는 퍽 ‘닮은꼴’이다. “다소 침체돼 있는 점, 검은 먹구름이 낀 듯 안팎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점 등이 특히 비슷해요. 하지만 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삼성전자가 겪고 있는 위기는 말하자면 ‘장수 기업이 거쳐야 할 통과제의’ 같은 거니까. 개인이든 조직이든 위기는 항상 있게 마련이고, 100년 이상 롱런한 기업의 역사를 봐도 늘 좋은 시절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는 “큰 주기로 살폈을 때 삼성전자가 지금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는 건 맞지만 지금 잘 해내면 얼마든지 더 큰 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말처럼 ‘위기가 곧 기회’이고,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크게 한 번 변화를 모색할 때란 얘기다. 이 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삼성전자가 맞닥뜨린 위기는 비단 ‘삼성전자’란 하나의 기업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며 모든 글로벌 기업에 닥친 상황이다. 후진국과의 기술 격차는 점점 좁혀지는데 세상을 바꿀 만큼 새로운 발명은 나오지 않는 형편이다 보니 엇비슷한 제품만 쏟아내는 형국부터가 딱 그렇다. 그는 “생산 과잉으로 인한 불경기는 당분간 지속될 게 분명하다”며 “결국 승부수는 군더더기를 과감하게 덜어낸 ‘고품질 저가 제품’으로 띄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눈에 요즘 삼성전자는 ‘춤추는 고래’처럼 보인다. “칭찬을 한껏 들은 고래가 공중에 위태롭게 떠 있는 상황 같아요. ‘승자의 저주’ 첫 문턱에 들어왔다고 해야 할까. 이 상황을 타파하려면 ‘창조적 파괴’가 필요할 것 같아. 업무상 종종 삼성(전자 사옥)에 갈 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모든 게 너무 완벽하다’고 느껴요. 그게 장점이고 또 단점이지. 사람 냄새가 좀 덜 난다고 할까?” 그와의 인터뷰는 요즘 세대의 신조어 하나로 마무리됐다. “창조적 파괴에 집중하면 더 이상 갤럭시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난 삼성이 ‘깜놀’(‘깜짝 놀랐다’를 줄여 쓴 은어)을 찾아냈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없던, 모두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 제품 말이야. 그게 숙제인 것 같아요.”  

by 삼성전자

삼성전자

삼성전자 뉴스룸의 직접 제작한 기사와 이미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뉴스룸이 제공받은 일부 기사와 이미지는 사용에 제한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콘텐츠 이용에 대한 안내 바로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