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3D 프린팅 유니버스’가 몰려온다

201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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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 근무하는 강예원(37, 가명)씨. 바쁘게 일에 몰두하다가 캘린더에 눈길을 준 순간, ‘얼음’이 됐다. 한참 후인 줄 알고 있던 대학 동아리 ‘홈 커밍 파티’가 사흘 후인 주말로 다가온 것. 친구들 사이에서 ‘패셔니스타’로 통하는 그의 머릿속은 하얘졌다. ‘뭘 입고 가지?’ 하지만 고민도 잠시뿐. 그는 곧 밀려드는 일로 다시 바빠졌다. 이번 주엔 결산 마감이 있어 쇼핑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점심 시간, 동료와 함께 식사를 마치고 회사 라운지에서 ‘커피 브레이크’를 즐기던 그는 다시 주말 파티를 떠올렸다. 즉시 스마트폰을 열고 자주 접속하는 CAD(컴퓨터 도면 제작)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활성화했다. 10여 분간 앱에 머물며 평소 갖고 싶었던 목걸이와 팔찌 디자인을 대략 완성한 후 온라인 3D 프린팅 대행 서비스 업체 ‘메이크잇올(MakeItAll)’ 웹사이트의 새 창을 열었다. ‘쇼핑몰’ ‘액세서리’ 카테고리를 차례로 클릭한 후 막 완성한 디자인 파일을 업로드하니 곧바로 ‘주문 완료’ 메시지가 뜬다.

토요일 오전, 강씨는 늦은 브런치를 즐기며 전날 밤 경비실에서 넘겨 받은 택배 상자를 열어본다. ‘생각보다 잘 나왔네. 얼마 전 장만한 블랙 미니 원피스에 이 목걸이와 팔찌로 포인트를 주면 되겠어!’ 그가 ‘나만의 액세서리’를 손에 넣는 데 들인 돈은 기성품 매장에서 유사한 제품을 구입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3분의 1 수준. 그는 몇 시간 남짓 앞으로 다가온 파티를 흐뭇하게 기다린다.

 

IT 산업, 제조업까지 ‘접수’하다

위 가상 시나리오는 불과 수년 후면 현실이 될 일상을 그리고 있다. 강예원씨의 파티 준비를 도운 3D 프린팅(3D printing) 산업은 실제로 몇 년 전부터 첨단 테크놀로지 세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분야다. 3D 프린팅이란 물건을 ‘평면’이 아니라 ‘입체’로 찍어내는 기술이다. 물건의 모양이 ‘종이’라는 평면 위에 인쇄되는 게 아니라 물건 그 자체가 3D 프린터에서 빠져 나온다.

지금까진 어떤 상품을 만들려면 평면인 여러 부분을 따로 만들어 조합해야 했다. 신발을 예로 들면 이제까진 △바깥 바닥 △안쪽 깔창 △발등을 덮은 부분 △뒤꿈치 부분 △끈을 묶는 부분 등을 전부 따로 평면적 소재에 그려 오린 후, 각각을 봉제하거나 접착제로 붙여야 했다. 하지만 3D 프린팅에선 원하는 모양의 신발을 스캔하거나 CAD 파일로 그린 후 프린터에 입력하면 신발 모양 그대로 프린터가 찍어낸다.

3D 프린팅 산업의 도래는 ‘이제 IT가 제조업까지 접수했다’는 의미여서 눈길을 끈다. 컴퓨터 관련 기술(3D 프린팅)이 ‘공장’을 대신할 수 있게 됐기 때문. 당연히 이 기술은 제조업 분야의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제조업은 대부분 물질로 구현되는 하드웨어 산업이었다. 당연히 정보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하는 소프트웨어 산업, 이를테면 IT 산업과는 생산 방식이 사뭇 다른 분야로 인식됐다.

3D 프린팅은 제조업계의 혁신에 그치지 않고 산업과 경제, 어쩌면 사회·문화 전체를 뒤흔드는 ‘지각변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거세지고 있는 3D 프린팅 바람은 미래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세포에서 우주정거장까지… ‘한계’는 없다

다국적 시장 조사 전문 기업 월러즈(Wohlers)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3D 프린팅 시장 규모는 약 41억 달러(4조6000억 원)로 전년도에 비해 35% 이상 성장했다. “오는 2020년이면 시장 규모는 108억 달러(12조1000억 원)을 넘어설 것”이란 게 이 보고서의 예측이다.

3D 프린팅 시장의 급증은 이 기술의 용도가 얼마나 다양한지 보여준다. 실제로 3D 프린팅 기술은 생활잡화나 완구, 액세서리는 물론이고 세포 같은 초소형(micro) 물질에서부터 주택 등의 초대형(macro)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하게 활용된다.

활용도가 가장 높은 곳은 역시 제조업 분야다. 제조업계에선 이미 상당수 부품을 3D 프린팅 기술로 생산해내고 있으며, 그 비중 역시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아예 최종 생산물을 3D 프린팅 기술로 만들어내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유럽항공방위산업체(EADS)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조립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온전한 자전거를 ‘인쇄’해냈다. 영국 사우샘프턴대학은 3D 프린터로 시속 160㎞ 무인비행기 ‘에어버스(Airbus)’를 만든 데 이어 동일 원리로 ‘에어바이크(Airbike)’란 자전거를 선보이기도 했다.

3D프린트로 에펠탑을 만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건축업 역시 3D 프린팅 활용도가 높은 분야다. 건설 예정 건물의 모형(miniature)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건 기본이고 실제 건물을 짓는 데도 3D 프린팅 기술이 종종 쓰인다. 지난해 개봉된 영화 ‘국제시장’은 세트 전체를 3D 프린팅 기술로 지어 올렸다고 해 주목 받았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다른 행성들의 자원 탐사 프로젝트에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즉석 우주기지 제작 계획’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의료 분야에서도 3D 프린팅 기술의 응용 가능성이 높다. 당장 인간의 조직이나 기관, 혈관 등을 복제하는 3D 바이오프린팅(3D bio-printing)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스캐닝 기기(scanning device)로 의수∙의족 등을 정밀하게 제작, ‘맞춤형 보철’을 생산하기도 한다. 식품∙의류∙주거용품 등 기타 산업 분야에서도 3D 프린팅 기술이 적잖이 적용되고 있다.

 

점이 모여 평면으로, 평면이 모여 입체로

평면 인쇄를 무수히 집합시키면 입체 인쇄가 된다. 3D 프린팅의 기본 원리 역시 이와 동일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평면 인쇄, 즉 2D 프린팅도 결국 ‘점(點)’이란 1차원적 요소가 모인 것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면(面)’이란 2차원적 요소가 계속해서 쌓이면 ‘입체’란 3차원적 요소가 완성된다.

점이 모여 선, 면을 이루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3D 프린팅 기술의 일반적 원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찍어낼 형상을 기억장치에 저장시키는 작업이 이뤄진다. CAD 파일로 새로운 형상을 만들 수도, 3D 스캐너를 활용해 기존 형상을 여러 각도에서 스캔한 후 그 데이터 값을 저장할 수도 있다. 이 단계에서 ‘컴퓨터 자동 가공’ 공정이 더해진다. 다시 말해 이 형상을 가로로 미세하게(0.01~0.08㎜) 켜켜이 잘라낸(slicing) 후 각 단면의 형상 데이터로 가공, 저장하는 것이다.

출력 단계에서 슬라이스 형태로 된 형상을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아간다. 이때 앞선 단계에서 미세하게 잘린 단면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져야 비로소 하나의 물품이 완성된다. 이렇게 각각의 단면을 붙여가는 방법의 차이에 따라 3D 프린팅 기술은 다양하게 전개된다.

 

어느새 한국에도 상륙한 ‘3D 프린팅 열풍’

지난달 24일부터 이틀간 킨텍스(KINTEX,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에서 ‘인사이드 3D 프린팅 컨퍼런스’가 열렸다. 15개국 70여 개 업체가 참여한 이 행사는 국내외 최신 3D 프린팅 기기와 기술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메르스(MERS) 여파로 웬만한 전시회는 사람 모으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유독 이곳만큼은 많은 인파가 모여 성황을 이뤘다.

지난달 말 킨텍스에서 열린 ‘인사이드 3D 프린팅 컨퍼런스’는 3D 프린팅 기술에 대한 국내 시장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행사였습니다▲지난달 말 킨텍스에서 열린 ‘인사이드 3D 프린팅 컨퍼런스’는 3D 프린팅 기술에 대한 국내 시장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행사였다

실물 크기 아이언맨 슈트, 어린이와 키덜트족(kidult族)이 열광할 만한 캐릭터 피규어와 미니어처, 관음보살반가사유상과 프랑치스코 교황 흉상 등 각종 인물상(像), 각종 패션 액세서리와 생활잡화, 각종 의료장비와 보철기구…. 이 모든 게 3D 프린터가 빚어낸 ‘작품’이었다. 품목은 물론, 생산설비의 규모와 수준도 천차만별이었다. 행사장 한쪽에선 빠른 속도로 물체를 찍어내는 산업용 3D 프린터가 한창 시연 중이었고, 곳곳에서 3D 프린팅 관련 데모 비디오(demonstration video)를 만날 수 있었다. 볼펜처럼 손에 쥐고 허공에 그리는 동작만으로 입체적 물체를 만들어내는 3D 펜도 있었다.

전시회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3D 프린터로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의 범위’가 얼마나 다양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아울러 국내에서도 3D 프린팅 분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향후에도 이 같은 3D 프린팅 분야 신기술 교류는 다양한 형태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3D 프린팅 기술의 가능성은 전시장의 공간적 한계를 훌쩍 넘어선다. 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전 세계 경제 구조를 바꾸는 주요 원동력으로까지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3D 프린팅, 정말 ‘제3차 산업혁명’ 견인할까?

이제까지 제조업은 △엄청난 자금을 들여 △많은 인원을 동원하고 △규모가 클수록 성공 확률이 높은 산업 분야로 여겨졌다. 비행기나 자동차처럼 덩치 큰 상품에서부터 물컵이나 액세서리 같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뭔가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팔려면 사무실∙공장∙영업소를 모두 갖춰야 하는 구조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시설을 유지하려면 많은 이윤을 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한 가지 물품을 개발하면 많이 찍어서 팔아야 한다. 20세기 소비자들은 이처럼 큰 공장에서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 자체에 열광했다. 이 같은 대량 생산 방식을 처음 성공적으로 도입한 ‘미국 자동차 산업의 아버지’ 헨리 포드(Henry Ford)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자동차 구매자는 원하는 색상을 선택할 수 있다. 단, 그 색이 검정인 한에서.”

여성소비자가 휴대폰을 들고 새로운 모바일 라이프에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소비자들이 포드의 이 말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가볍게 코웃음 친 후 자기 노트북 PC나 스마트폰을 열 것이다. 무수한 온라인 쇼핑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상품 중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과 색상, 기능을 고르는 것 자체가 그들의 최대 즐거움이다. 세계 인구 수만큼이나 다양한 개성이 넘쳐나는 제품 세계, 소비자의 입맛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20세기적 대량 생산 방식으로는 이처럼 점차 고급화되고 다양해지는 소비자의 입맛을 결코 맞출 수 없다.

세계적 인터넷 매체 ‘와이어드(Wired)’를 이끌고 있는 크리스 앤더슨은 이런 현상을 가리켜 ‘긴 꼬리(long tail)’라고 부른다. 이전엔 다량 구매 비중이 시장 매출의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최근 들어 소량 구매 소비자 수가 늘면서 총체적 경제 규모가 대량 구매자의 그것을 능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매출 그래프에서 ‘꼬리’ 부분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온라인 쇼핑 비중이 늘면서 가능해진 현상이다. 세계 구석구석을 뒤져 자기 맘에 꼭 맞는 상품을 찾아내 구매하는 일이 아주 쉬워졌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 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이 같은 현상을 ‘제3차 산업혁명’이라 명명하고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영국 경제 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이 같은 현상을 ‘제3차 산업혁명’이라 명명하고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1·2차 산업혁명이 ‘공장’ 중심이었다면 3차 산업혁명의 중심은 단연 ‘소비자’다. 디자인과 제조 공정이 디지털화되면서 최종 소비자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상품 제작에 참여하게 된 덕분이다. 이렇게 설계된 ‘맞춤형 상품’은 3D 프린터를 통해 적은 비용으로 소량 생산이 가능해진다. 3D 프린터는 디자인 파일만 바꿔 업로드해주면 매번 다른 제품을 생산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단순히 소비자 취향 문제를 넘어서서 경제구조 전체를 바꾸고 있다. ‘보다 싼 부지와 임금을 찾아 먼 곳까지 가서 대량 생산을 통해 많은 이윤을 내려 했던’ 생산 방식이 ‘소비자 가까운 곳에서 필요한 만큼 생산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그 동안 중국이나 제3세계로 진출했던) 제조업이 점차 소비자 가까이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금 세계는 제3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를 지켜보고 있다. 시작은 작은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었다. 점이 모이면 평면이, 평면이 모이면 입체가 될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란 날갯짓이다. 그 깨달음을 인간 생활의 필요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3D 프린팅 형태로 구현되며 한 개인의 취향에서 사회 전체 경제 구조까지 모든 수준에서의 변화들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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