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구조적 저성장 시대, 돌파구를 찾아라

2014/12/12 by 송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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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틀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글로벌 경제 위기로 국내외 경제의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고착화되는 소위 ‘뉴노멀(new normal)’ 시대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심지어 내로라하는 경제학자 중 상당수는 세계 경제의 장기침체론(secular stagnation)까지 점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국내외 경제의 중·장기 저성장 기조 고착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은 뭘까? 한국이 이 같은 상황에서 성장 동력을 찾아 구조적 저성장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 경제, 잇따른 악재 속 ‘주춤’

세계는 지금 경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진입니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대공황까지 우려되던 글로벌 경제 위기가 각국 정부의 대규모 유동성 투입과 경기 부양책, 그리고 중국 등 신흥시장 경제의 선전 덕에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하지만 선진국 경제, 특히 유럽 국가와 일본 경제는 저성장 기조가 수 년간 지속될 전망이다. 경제 위기 이전 과도하게 늘었던 민간 부문 부채의 고통스러운 디레버리징(deleveraging, 부채 정리)이 지속되는 한편, 부동산 가격 하락과 실업률 급증으로 소비 위축이 심각한 상황에서 중국 중심의 제조업 공급 과잉은 아직 제대로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공업 원료인 석유의 가격이 폭락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자원에 의존해 온 일부 국가에선 원자재 가격 폭락으로 경제 위기 조짐마저 보이고 있어
세계 경제의 저성장 우려는 더욱 증폭되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양적 완화 중단 조치에서 보듯 경제 위기 극복 과정에서 각국 정부가 돈을 쏟아 부은 결과 발생한 과잉 유동성과 심각해진 재정 적자, 정부 부채 문제도 경제 회복 기미가 보이면 빠르게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국내외 경제의 저성장 기조는 더욱 고착화될 전망이다. 여기에 글로벌 경제 위기 극복 과정에서 세계 경제의 또 다른 성장 동력으로 급부상한 중국 등 신흥시장 경제 성장 속도도 눈에 띄게 더뎌졌다. 자원에 의존해 온 일부 국가에선 원자재 가격 폭락으로 경제 위기 조짐마저 보이고 있어 세계 경제의 저성장 우려는 더욱 증폭되는 상황이다.

 

미·일 등 선진국, 안갯속 ‘고군분투’

필자는 연초 제프리 이멜트(Jeffrey Immelt) 제너럴일렉트릭(GE)사 회장의 초청으로 GE 경영진 회의에서 기조강연을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이멜트 회장에게 ‘향후 5년간의 세계 경제 전망’에 대해 질문을 던졌는데 그는 “선진국이라면 저성장의 덫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대답을 내놓았다. 특히 유럽의 경우 유럽중앙은행 (ECB)의 국채 무제한 매입 조치 등으로 남유럽 경제가 최악의 위기는 모면한 듯하지만 저성장 상황은 오히려 장기화될 전망이다.

미국이 나홀로 경제 성장을 하고 있다는 그래프를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세계 경제가 긴밀하게 연동된 상황에서 유럽·일본 등 기타 선진국과 신흥시장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이상
미국만 ‘나 홀로 성장’을 이루기도 쉽지 않다.

 

배리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 미국 UC버클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찍이 유럽을 향해 “향후 10년간 저성장을 지속할 확률이 80%”라고 경고했다. 다행히 최근 미국은 소비와 주식시장, 부동산이 살아나고 올 2분기 이후 3%대의 깜짝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선진국 중 유일하게 긍정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실업률과 천문학적 정부 부채, 양적 완화 중단과 (내년으로 예정된) 금리 인상으로 금융 위기 이전 수준의 고성장 기조로 복귀하긴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세계 경제가 긴밀하게 연동된 상황에서 유럽·일본 등 기타 선진국과 신흥시장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이상 미국만 ‘나 홀로 성장’을 이루기도 쉽지 않다.

일본의 경제 위기와 엔화의 폭락을 의미하는 이미지입니다.

아베노믹스가 결국 실패로 귀결되면 일본은 신용등급과 국채가격 하락으로 심각한 재정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다시 일본발(發) 경제 위기와 엔화 가치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은 최근 아베노믹스에 의한 공격적 양적 완화 정책과 재정 투입, 엔화 가치 하락 유도 정책 등에 힘입어 일시적으로 경제성장률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 소비세 인상 이후 다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며 아베노믹스의 실패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경제 구조의 근본적 개혁과 신성장 동력 창출 없인 선진국 최악의 과도한 정부 부채(GDP 대비 240% 수준)와 20년 이상 지속된 저성장에 따른 경제 체력 저하를 극복하고 고성장 국면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반발 등으로 경제 구조 개혁은 지지부진한 상황이어서 아베노믹스 실패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결국 실패로 귀결되면 일본은 신용등급과 국채가격 하락으로 심각한 재정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다시 일본발(發) 경제 위기와 엔화 가치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등 신흥시장도 장기침체 가능성

신흥시장 쪽 상황도 그리 좋지 않다. 중국 등 신흥시장 경제가 수출을 중심으로 선진국 경제와 밀접하게 연계된 상황에서 주요 수출 시장인 선진국의 경제 침체는 신흥시장 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재작년부터 중국 경제 성장률이 급락, 연평균 7%대로 떨어진 최대 요인은 수출 부진이었다. 특히 선진국 수요는 침체된 상황에서 철강업 등 주요 제조업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 공급 과잉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천연자원 가격까지 조정 받고 있어 중국 등 신흥시장 국가 역시 고성장을 지속하긴 힘든 상황이다.

인구 증가가 경제 성장과 관련 있음을 보여주는 이미지입니다.

사실 인구 증가는 경제 발전의 주요 동인 중 하나였다.
일본이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의 늪을 탈출하지 못한 첫 번째 이유는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다.

 

여기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직면한 저출산 고령화와 일본·유럽·한국 등 일부 국가가 이미 직면했거나 곧 직면하게 될 ‘인구 절벽(인구 감소로 인해 소비 둔화와 경제 하강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도 세계 경제의 구조적 저성장 견해에 힘을 더하고 있다. 사실 인구 증가는 경제 발전의 주요 동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대(15~64세) 감소와 인구 절벽은 필연적으로 △소비 침체 △(제조업을 필두로 한) 국가경쟁력 저하 △생산 거점의 해외 이전으로 인한 고용 침체 △복지 비용의 폭발적 증가로 인한 정부 재정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 경제학자들은 일본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 경쟁력을 갖추고도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에 빠져들고 지금껏 그 늪을 탈출하지 못한 첫 번째 이유로 저출산 고령화 현상을 꼽는다.

고용 축소로 일자리를 잃고 있는 사람들을 표현한 이미지입니다.

IT·로봇 등 기술의 놀라운 발전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해줬지만
선진국을 중심으로 사무직과 생산직 일자리 축소를 초래하기도 했다.

 

IT·로봇 등 기술의 놀라운 발전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해줬지만 선진국을 중심으로 사무직과 생산직 일자리 축소를 초래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IT가 금융에 접목되면서 은행 창구 업무의 90%가량이 인터넷뱅킹과 모바일 뱅킹, ATM으로 대체됐다. 더 이상 이들 업무에 예전처럼 많은 직원이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더욱이 IT 발달로 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저렴한 비용으로 실시간에 연결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비즈니스프로세스아웃소싱(Business Process Outsourcing, BPO, 핵심 역량을 제외한 회사 업무 처리의 과정 일체를 외부 전문 업체에 맡기는 아웃소싱 방식)을 가속화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인사·회계·소프트웨어개발·콜센터 등 과거 본사에서 행해지던 업무가 대거 (영어에 능통한 대졸자를 저렴하게 고용할 수 있는) 인도 등 신흥국가로 넘어가고 있다.

이처럼 세계 경제는 경제 위기와 소비 침체, 고용 축소 등 3중고를 겪고 있으며 이는 고스란히 기업의 투자 부진으로 이어지는 실정이다. 최근 미국 재무부 장관과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경제학자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박사는 세계 경제의 장기침체론을 펼쳤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등 세계적 경제학자들이 이에 동조하면서 장기침체론은 세계적 화두로 부상했다.

이처럼 세계 경제가 당분간 구조적 저성장에 시달리며 수출 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 내부의 구조적 리스크도 높아지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돼 오는 2017년이면 생산가능인구대가 정점을 찍고 내려갈 전망이며, 2020년이면 인구 절벽에도 직면할 수 있다. 또한 1000조 원을 넘어선 가계 부채와 부동산 가격 하락, 전세 가격 급등, 소득 양극화 심화로 인해 소비 위축도 심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내년에도 한국 경제 성장률 목표는 여전히 3%대에 머무르며 구조적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실이다. 일부에선 일본식 장기 불황에 대한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잃어버린 20년’ 일본 전철 밟지 않도록

어려운 상황이지만 모두가 협력하면 희망이 있다는 의미로 사람들이 손을 맞대어 파이팅하는 사진입니다.

이번 저성장 국면도 한국 경제의 구조 개혁과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국민들이 뜻을 함께한다면
오히려 한국 경제가 제2의 도약을 하는 전기로 삼을 수도 있다.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의 구조적 저성장 국면을 돌파, 고성장 국면으로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정부와 정치권, 기업, 국민이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뜻을 모아야 한다. 우리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금 모으기 운동, 노사정 대타협 등 국민들의 일심단결과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으로 빠르게 극복한 전례가 있다. 이번 저성장 국면도 한국 경제의 구조 개혁과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국민들이 뜻을 함께한다면 오히려 한국 경제가 제2의 도약을 하는 전기로 삼을 수도 있다.

경제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기업은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해 내실 경영 체제를 공고히 하는 한편,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해 핵심 사업과 역량 위주로 사업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중·장기 저성장 국면에서도 여력이 있는 기업이라면 핵심 역량 강화, 창조적 혁신과 신성장동력 창출을 통해 수익성을 동반한 성장을 지속할 수도 있기에 무조건 방어적 경영으로 움츠러들기만 해선 곤란하다. 국내외 경제의 저성장이 우려될 뿐 대공황이나 심각한 경제위기 국면은 모면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기업이라면 국내외 경제의 저성장 국면을 주력 사업 점유율 제고는 물론이고 비즈니스 모델 혁신, 국내외 기업 M&A, 국내외 우수 인력 확보 등을 통해 극복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한국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있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신성장 동력 확보와 벤처 육성 등 ‘경제 살리기’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기업의 국내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규제 완화와 지원책을 강화하는 동시에 내수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서비스 산업 육성과 양질의 고용 창출 노력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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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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