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세상의 ‘이야고’들에게 대처하는 법

2015/05/26 by 김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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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는 사랑과 질투에 관한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고지식한 ‘오셀로’ 장군이 악당 ‘이야고’의 속임수에 넘어가 아내를 의심하고, 질투를 이기지 못해 결국 아내를 제 손으로 죽이는 치정 살인극이라고 말이다. 이렇게 요약하면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오셀로>는 그리 간단한 작품이 아니다.

베네치아의 흑인 장군 오셀로는 국가 원로 ‘브라반쇼’의 딸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진다. 브라반쇼는 오셀로가 외국인인데다 흑인이란 사실을 알고 두 사람의 관계를 반대하지만 둘은 마침내 원로원에서 결혼을 승낙받는다. 때마침 투르크 함대가 사이프러스섬을 침공하고 오셀로는 섬을 지키러 아내와 함께 전장으로 떠난다.

한편, 오셀로의 신임을 받으면서도 그를 시기하던 부하 이야고는 원하던 부관 자리를 ‘카시오’에게 뺏긴 데 앙심을 품는다. 그는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게 선물한 손수건을 훔쳐 일부러 카시오의 방에 떨어뜨리곤 오셀로에게 ‘데스데모나와 카시오는 밀회 중’이란 메시지를 흘린다. 손수건을 아내 불륜의 증거로 믿은 오셀로는 질투에 불타 침대 위에서 자기 손으로 데스데모나의 목을 눌러 죽인다. 이야고의 거짓에 속아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고 만 오셀로는 모든 일이 이야고의 계략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죄책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책
 

세계문학사상 가장 지독한 악당, 이야고

사실 <오셀로>의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특별하고 역할 비중이 높은 이는 이야고다. 대사도 가장 많다. 이야고는 세계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악당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악당이다. <오셀로>에선 데스데모나와 오셀로 외에 로데리고와 이야고 부인 등 총 네 명의 등장인물이 죽는다. 이야고가 자신의 부인과 로데리고를 죽이고,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죽인 후 자살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들 넷은 모두 이야고에 의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덤

자신의 손을 직접 쓰지 않고 사람을 해치는 행위를 ‘차도살인(借刀殺人)’이라고 한다. 이는 살인 중에서도 가장 악독한 살인이다. 차도살인을 즐기는 악당들은 남에게 끊임없이 부정적인 메시지를 암시하고, 타인의 약점을 살살 건드린다. 사람들의 참을성을 무너뜨리는가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 불화를 심화시키는 기술에도 능하다.

<오셀로>에서 부관 임명에서 탈락하며 앙심을 품은 이야고는 오셀로의 귀에 이렇게 속삭인다. “부인께선 같은 나라, 같은 피부색, 같은 신분의 수많은 혼처를 모조리 외면했단 말씀입니다.” 언뜻 듣기엔 경쟁에서 이긴 오셀로의 능력을 치켜세우는 듯하지만 그 말 뒤엔 ‘당신은 외국인이고 피부색도 우리와 다르며 신분 또한 미천하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오셀로의 아킬레스건을 자극한 것이다.

이야고는 자신의 언행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사랑은 ‘헛소리’고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믿을 수 없는 존재’이며 도덕이란 ‘들키지만 않으면 뭘 해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는 매사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다. 자신의 아내와 오셀로가 부정한 관계라 확신하고, 백인인 데스데모나가 흑인인 오셀로를 사랑해 결혼하는 건 추악하고 비정상적인 행동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같은 확신 때문에 세상의 이야고들은 주저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파멸시킨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라”는 주문 경계해야

우린 세상의 이야고들에게 어떻게 맞서야 할까. 맞설 수 없다면 피하기라도 해야 할 텐데 잘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또 뭘까. 영국 추리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도 이런 고민을 한 모양이다. 크리스티는 <커튼>이란 작품을 통해 이 질문에 대답을 시도한다. <커튼>엔 이야고를 연상시키는 지독한 악당 ‘X’가 등장한다. 탐정 ‘포와로’는 조수 ‘헤이스팅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가 알아야 할 게 있네, 헤이스팅스.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 살인자라네. 살인을 저지를 의지라고까진 말할 수 없지만 가끔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들지. 하지만 누구나 그걸 실행에 옮기진 않아. X는 사람들에게 살인의 욕망을 암시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정상적 사회적 내성을 무너뜨리지. (중략) X는 사람들의 취약점에 더 큰 압력을 가하기 위해 어떤 단어와 구절, 어조를 사용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네. 사람들 사이의 불화를 증폭시키는 방법이 바로 그거야. (중략) 이것이야말로 최고로 악랄한 기술일세.”

귓속말로 험담하는 사람들

이야고는 도처에 널려 있다. 이 ‘궁극의 악당’들은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타인의 내면을 조종하는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사람의 꿈을 꺾고,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며, 조직을 파멸시킨다. (“이런 회사 다녀봤자 결국 ‘꽝’이야” “일 열심히 해봐야 결국 ‘빽’ 없으면 아무 소용 없어” “여자는 절대 믿지 마” “남자는 다 늑대야” “○○나라 사람들 절대 믿지 마. 다 사기꾼이거든”) 또한 이들은 우리 귀에 대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라’고 속삭인다. (“이웃집 누구는 결혼할 때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랑 명품 백 받았다는데 너희 시댁에선 뭘 해준대?” “요즘 어지간한 사모님들은 이것 다 샀어요. 이제 몇 개 안 남았어요.”)

또 이야고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으로도 활동한다. 그들은 때로 광고 형태로 등장해 ‘성형수술 하지 않으면 돈 많은 남자를 만나지 못할 것’ ‘명품 백을 들지 않으면 가난해 보일 것’이라며 소비자를 부추긴다. 이런 이야고들에게 쉽게 넘어가는 사람들은 대개 오셀로처럼 마음속 콤플렉스를 감추고 있게 마련이다. 이야고는 어쩌면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열등감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악당도, 그에 맞설 무기도 결국 ‘내 안’에

아가사 크리스티는 탐정 포와로의 입을 빌어 ‘이야고 대처법’으로 다음 세 가지를 추천한다. 첫째,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가?”). 둘째, 사물에 대한 가치관을 분명히 해야 한다(“이건 나쁜 짓인가, 아닌가?”). 셋째, 자신의 일에 충실해야 한다(“난 뭘 하는 사람인가?”).

바다 보며 고뇌하는 사람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하면 남이 무슨 말을 하든 흔들리지 않을 능력이 생긴다. 사물에 대한 가치관이 분명해지면 확실한 행동 규범, 이를테면 ‘절대로 폭력을 쓰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욕설을 하지 않는다’ 등이 생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면 타인의 유혹에 쉬이 휘둘리지 않는다. 예컨대 ‘난 반도체 만드는 사람’이란 자기 규정이 확실한 사람에게 ‘어디 땅을 사면 일확천금이 굴러온다더라’ 따위의 유혹은 잘 통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이야고들은 우리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할 때 스멀스멀 그 본색을 드러낸다. 잊지 말자. 악당도, 그 악당에 맞설 무기도 결국 자기 안에 있다는 걸.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김무곤

동국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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