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왜 우리나라엔 구글 같은 기업이 없을까?

2014/09/26 by 문송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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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토니 블레어(Tony Blair) 영국 총리가 퇴임을 얼마 앞두고 자국의 저명 대학교수들을 호출했다. 대부분 영국을 대표하는 IT 학자들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왜 영국엔 구글 같은 기업이 없느냐"고 쓴소리를 던졌다. 참석자들은 총리의 질문에 아무런 답도 내놓지 못했다. 이후 이 에피소드가 세간에 알려지며 한동안 회자됐다.

키보드에 영국 국기와 web 키가 나란히 놓여져 있습니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답게 컴퓨터 혁명과 인터넷 혁명을 각각 주도한 국가다. 혹자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최초의 컴퓨터는 1946년 미국에서 개발된 에니악(ENIAC)이며 인터넷 역시 1969년 미국에서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게 교과서적 상식이기 때문이다.

영국이 최초로 제작한 콜로서스 컴퓨터의 모습입니다.▲영국이 최초로 제작한 콜로서스 컴퓨터(출처: 위키피디아/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영국이 컴퓨터 제작에 성공한 건 미국보다 3년 앞선 1943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영국 정부는 독일군의 교신 암호를 풀기 위해 최초의 연산 컴퓨터 '콜로서스(Colossus)'를 개발했다. 이 사실은 영국 정부에 의해 기밀에 부쳐졌다가 최근에야 공개됐다.

유리벽면에 www(world wide web)을 적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1969년 미국에서 시작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후 20년간 인터넷은 어디까지나 몇몇 IT 전문가의 전유물이었다. 오늘날과 같이 인터넷이 보편적으로 쓰이게 된 데는 1989년 영국인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가 창시한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 이하 '웹')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버너스리는 웹에 대한 지적재산권 주장을 포기해 전 세계 모든 인류가 웹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장본인이다. '영국 최고 지성'으로 꼽히는 그는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웹 시연 무대를 펼치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를 선보이고 글로벌 웹 열풍을 이끈 영국에서 구글 같은 기업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비단 블레어 총리뿐 아니라 대다수 영국인에게 '미스터리'다. 이에 대해 혹자는 "영국인에게 기업가정신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라고 평한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정곡을 비껴간, 어설픈 진단이다.

핵심기술 추격이 어려운 것도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이다.
특히 OS는 안드로이드처럼 소스코드를 공개하기 전까진 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다.
불법 복제 문제가 존재하긴 하지만 OS 같은 핵심 소프트웨어는 그 법적 권리(지적재산권)를
철저하게 보장받는다. “한국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 기업이
하나 정도는 나와야 한다는”는 지적에 힘이 실리는 건 그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미국엔 구글 같은 기업이 7개 더 있다. 종종 ‘미국의 8대 IT 기업’으로 불리곤 하는 이 카테고리엔 구글을 비롯, 마이크로소프트(MS)·IBM·오라클·휴렛패커드(HP)·애플·페이스북·아마존이 포함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8개 기업 모두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것이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은 독자적 운영체계(OS)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활용한 명령어 제작의 모습입니다.

일반적으로 OS 1개 분량은 5000만 행에 이른다. 쉽게 말해 윈도7 컴퓨터 명령어를 모니터에 입력하면 라인(line) 수가 줄잡아 5000만은 된다는 얘기다. 새로운 OS를 하나 개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짧게는 1년 6개월, 길게는 2년으로 상당하다. 최소 2000명 이상의 A급(여기서 'A급'은 매일 30라인씩의 컴퓨터 코드를 1년간 꾸준히 제작할 수 있는 수준의 개발 인력을 뜻한다) 프로그래머와 개발 소요 기간을 감당할 수 있는 자본력을 갖추지 않으면 OS 개발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소프트웨어 육성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2일 미래창조과학부는 ‘2015년도 범부처 창조경제 예산’ 내역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내년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분야 편성 예산은 올해보다 14.4% 늘어난 6444억 원이다. 이 중 일명 ‘소프트웨어 중심사회 실현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만 2835억 원이다.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정부 발표대로 소프트웨어 중심사회가 실현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소프트웨어의 ‘꽃’은 단연 OS인데, 현재로선 국내 기업 중 OS를 개발할 수 있는 곳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대외적 상황은 위기감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당장 중국 정부가 “향후 2년 내에 자체 기술로 개발한 토종 OS가 기존 OS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저런 정황을 종합해볼 때 그 선언의 실현 가능성은 매우 높다.

Time for CHANGE.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IT 업계의 미래를 조언하는 목소리 가운데 대표적인 게 “하드웨어 기업 이미지를 탈피하고 하루빨리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부가가치 창출 측면에서 하드웨어 분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한 성과를 자랑한다. 기업의 존재 목적이 ‘이윤 창출’이란 점에서 볼 때 삼성전자 입장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의 변신은 불가피한 선택인 셈이다.

핵심기술 추격이 어려운 것도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이다. 특히 OS는 안드로이드처럼 소스코드를 공개하기 전까진 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다. 불법 복제 문제가 존재하긴 하지만 OS 같은 핵심 소프트웨어는 그 법적 권리(지적재산권)를 철저하게 보장받는다. "한국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 기업이 하나 정도는 나와야 한다는"는 지적에 힘이 실리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 간판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와 ‘스마트폰’이라는 전략 제품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일약 세계적 기업의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시시각각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글로벌 경영 현장에서 과거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는다. ‘차세대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소프트웨어 사업 육성은 그같은 고민에 대한 최적의 해법이 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삼성전자의 변신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진다. 삼성전자는 수천 명의 A급 프로그래머 채용과 2년 안팎의 투자 기간을 거뜬히 감당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균형을 이루는 선진국형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기업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문송천

KAIST 경영학과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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