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지역경제’ 살리기냐, ‘중소기업’ 살리기냐

2015/01/20 by 김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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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배재대 중소기업컨설팅학과 교수


지난 2013년 2월 새 정부 출범 이후 ‘지역 경제 살리기’ 정책의 캐치프레이즈는 ‘지역에게 희망을, 국민에게 행복을’로 요약된다. 여기에 지난해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이 직접 규제 개혁 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소위 ‘끝장토론’ 형식을 도입하는 등 규제 개혁 의지를 매우 강력히 표명하고 있어 적지 않은 국민이 ‘이제 뭐 좀 되려나’ 하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난해 8월 이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전국기초·광역자치단체를 찾아 그곳 공무원을 대상으로 ‘규제 개혁의 필요성과 경제 활성화’란 주제의 강의를 진행하고 느낀 결과다. 일단 수강생 대부분이 규제 개혁 강의를 재미없어 했다. “규제 개혁을 반드시 해야 하는 거냐”며 반문하는 이도 많았다. 하지만 ‘지역 경제 살리기’란 주제로 접어들자 현장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각종 채소가 쌓인 가판대에 로컬리 그로운(Locally Grown)이라고 쓰여진 푯말이 있습니다.

 

기업 지원에도 ‘기준’ 필요

예를 하나 들어보자. 특정 시(군·구) 소재 기업의 생산력이 떨어져 외부 업체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릴 때 해당 시(군·구) 관할 부서에서 이 기업을 일부 지원, 가격 경쟁력을 외부 기업과 엇비슷하게 만들어줬다. 그게 과연 제대로 된 지역 경제 살리기 정책일까? 오히려 시장에서 도태돼야 할 기업을 무리하게 부활시키는, 질 낮은 정책은 아닐까? 그래서 장기적으로 해당 시(군·구) 소재 기업의 경쟁력을 현저히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진 않을까?

‘지역 일자리 창출’과 ‘지역 기업(상권) 살리기’는 동의어가 아니다. 지역 기업 살린다며 해당 지역 주민 세금을 써버리면 그 지역이 반드시 투자해야 하는 미래 자원, 이를테면 청소년 교육이나 어르신 복지에 돌아갈 혜택은 줄어들 게 분명하다. 기초자치단체가 돕지 않으면 회생이 불가능한 기업? 그 기업의 성장판은 이미 오래 전 닫힌 것이나 다름없다. 스스로 어떤 도전도 감행하지 않고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지역 기업을 돕는 게 ‘지역 경제 살리기’라고 판단한다면 그건 명백한 착오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다양한 플랜을 짜는 모습, 책장 위에 건물들이 솟아나 있고 그 위엔 다양한 전략들이 연필로 쓰여 있습니다.

사업 주체가 외부든 내부든 해당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더 나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지역의 장기적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기초자치단체가 지역 사업 지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잣대는 ‘사업 주체의 활동이 우리 지역에 어떤 이점을 안겨주느냐’다. 이 명제는 대상을 국가 전체로 확대해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세계 각국이 해외 자본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뭘까? 투자 받은 자본으로 기업을 세워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외 선진기술과 경영기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경제도 마찬가지다. 사업 주체가 외부든 내부든 해당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더 나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지역의 장기적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기업의 등장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지역 상권 보호’의 딜레마

‘대규모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이 지역에 진출하면 원래 그곳에서 영업하던 중소기업은 궤멸된다’는 논리가 공공연히 통용되는 게 오늘날 현실이다. 대다수 지역의 기초자치단체는 지역 내 동종 기업이 없으면 대기업 진입을 환영하지만 조금이라도 비슷한 업종이 있으면 이런저런 조건을 달아 공장 짓기조차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 일단 진출한 기업에 대해서도 ‘지역 기업과의 상생’이란 명목으로 각종 규제의 굴레를 채운다. 이래저래 대기업의 지역 진출은 쉽지 않다.

대형슈퍼마켓에 제품들이 진열돼 있습니다.

소비자는 정책으로 내몬다고 쉬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요즘 소비자는 각종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로 무장, 빛의 속도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한다. 그 결과, 과거 어느 때보다 주체적으로 본인이 만족할 만한 재화와 서비스를 찾아 발 빠르게 이동한다.

 

이 같은 논리가 가장 극단적으로 적용되는 업종은 단연 서비스업이다. 일례로 대형 마트의 경우 지역 내 입점 자체가 힘들고, 어렵게 입점했다 해도 의무휴일이나 영업시간 단축 등 각종 규제로 정상적 경영 활동에 크고 작은 제약이 가해진다. 지금도 국회에선 몇몇 지역구 의원들의 맹활약에 힘입어 현재 ‘월 2일’로 정해진 의무휴일을 ‘월 4일’로 늘리는 법안이 상정돼 있다. ‘지역 내 대형 마트 판매 품목 제한’을 규정한 법안도 계류 중이다. 그야말로 ‘지역 중소 상인을 위해선 뭐든 할’ 태세다. 과연 그렇게 하면 모든 지역민이 좋아할까?

대구 인근 모 도시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기초자치단체가 중심이 돼 “우리 지역 기업을 살리겠다”며 각종 규제를 충실히 시행했는데 결과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버젓한 복합 쇼핑 공간 하나 없다 보니 지역민들이 너나없이 대구로 몰려간 것. 자연스레 이 도시 상권은 점차 쇠퇴하는 추세다. 이 사례는 ‘소비자는 정책으로 내몬다고 쉬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란 교훈을 던져준다. 요즘 소비자는 각종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로 무장, 빛의 속도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한다. 그 결과, 과거 어느 때보다 주체적으로 본인이 만족할 만한 재화와 서비스를 찾아 발 빠르게 이동한다. 그런데 정부는, 국회는 “그렇게 움직이지 말라”며 법으로 이를 강제한다.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힘들수록 ‘정공법’으로 가야

상점 주인이 손님에게 신선한 제품을 권하고 있습니다.

지역민은 유권자인 동시에 소비자다. 국회는 유권자를 더없이 의식하면서도 너무나 쉽게 소비자를 무시한다. 지역 의회 역시 소비자의 선택권은 나 몰라라 한 채 지역 기업과 중소상인을 위한 법안 양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이런 행태가 반복된다면 지금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극복할 방안 모색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힘든 때일수록 정공법이 필요하다. 경쟁력 있는 기업, 소비자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는 상인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시장 구조를 건전하게 재편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잠자던 기업가정신이 살아나고 더 나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인이 성장할 수 있다. 그 혜택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우리가 고민하는 경제의 진짜 활력은 그 과정에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

경쟁력 있는 기업, 소비자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는 상인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시장 구조를 건전하게 재편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잠자던 기업가정신이 살아나고 더 나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인이 성장할 수 있다.

 

어려울수록 길게 호흡하는 게 중요하다. 미래를 유념하며 오늘을 살아내는 지혜도 필요하다. 승승장구하는 중국, 어느새 우리나라를 턱밑까지 쫓아온 아세안 국가들…. 이런 상황에서 잠깐 해이해졌다간 우리가 50년 이상 힘겹게 쌓아 올린 모든 걸 한순간에 날릴 수 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이라도 ‘진정한 개혁을 이뤄내고야 말겠다’고 마음 먹지 않으면 현재의 난국을 헤쳐갈 수 없다. 개혁엔 많은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유산을 물려주려면 힘들더라도 지금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 우리 세대의 ‘고통’이 다음 세대의 ‘행복’으로 바뀔 수 있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역사는 말하고 있다. 오늘의 고통을 피한 나라를 기다리는 건 내일 겪게 될 ‘더 큰 고통’이라고.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by 김진국

배재대학교 중소기업컨설팅학과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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