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탁월한 스포츠 선수의 공통점, ‘스피릿(spirit)’

2015/05/29 by 강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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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호 서울대 스포츠경영학 교수


 

‘한국 축구의 유망주’ 이승우는 메시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까? 이천수나 박주영의 길을 밟게 될까? FC 바르셀로나 유소년팀(후베닐 A)에서 활약 중인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한 세계적 명문 구단들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영표 KBS 해설위원이 이승우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건넸다. 얼마 전, 수원JS컵 국제청소년축구대회(U-18)에 참석한 이승우가 감독의 교체 사인에 노골적 반감을 드러내고 경기가 잘 안 풀린다며 광고판을 차는 등 미성숙한 행동을 보인 데 대해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려면 좋은 인성과 인내심, 그리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지적한 것. 그렇다면 스포츠 선수를 탁월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뭘까?

 

‘1만 시간의 법칙’, 스포츠에서도 통할까?

미국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자신의 책 ‘아웃라이어’(2009, 김영사)에서 “고도의 전문성을 확보하려면 1만 시간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노력이 투입돼야 한다”는 일명 ‘1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했다. 이 주장의 핵심은 △재능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집중과 반복을 통해 자신의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거의 모든 스포츠 스타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3시간씩 연습했고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한국 축구의 간판스타는 한때 ‘축구 천재’로 인정 받던 이천수가 아니라 ‘평발’이란 불리한 조건을 성실함과 노력으로 이겨낸 박지성이었다.

하지만 1만 시간의 법칙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 ‘스포츠유전자(Sports Gene)’가 지난 2013년 미국에서 출판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저자인 스포츠 저널리스트 데이비스 엡스타인은 이 책에서 “스포츠 선수의 성공을 결정짓는 건 노력보다 유전자”라고 밝혔다. ‘아무리 노력해도 선천적 재능을 이길 순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두 명의 높이뛰기 선수를 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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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 때 높이뛰기를 시작한 스웨덴 출신 스테판 홀름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까지 2만 시간의 훈련을 견뎌냈다. 하지만 ‘바하마 육상 스타’ 도널드 토마스는 높이뛰기를 시작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2007년 세계육상대회에 출전, 스테판 홀름을 물리치고 우승했다. 흥미로운 건 이후 토마스가 무려 6년씩이나 연습을 거듭했지만 그의 기록은 단 1㎝도 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엡스타인의 주장은 지난해 잭 햄브릭 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 연구팀이 분야별 재능과 노력의 관계를 탐색한 연구 88편의 종합 분석 결과와도 유사하다. 햄브릭 교수팀의 결론은 “최고가 되려면 노력(훈련)이 필수이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으로 중요하진 않다”는 것이었다.

 

스피릿은 최고 기량 끌어내는 ‘터보엔진’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확보하려면 재능과 노력 중 어떤 게 우선시돼야 할까? 한쪽(말콤 글래드웰)에선 재능을 필요조건으로, 노력을 충분조건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다른 쪽(데이비드 엡스타인)에선 노력을 필요조건으로, 재능을 충분조건으로 본다. 사실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쟁과 같다. 재능이 있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노력해도 재능이 없으면 탁월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타고난 재능이 ‘(발현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를 정해준다면 노력을 포함한 후천적 요인은 그 범위 안에서의 수준을 결정 짓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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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선수로서의 탁월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재능과 노력 외에 한 가지 요소가 더 필요하다. ‘스피릿(spirit)’이다. 스피릿은 단순히 정신력(mental)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과 경기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육체와 정신, 영혼이 온전히 하나될 때 나타나는 내적 충만함이다. 또한 선수의 기량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초월적 힘이다.

스피릿은 마치 자동차의 터보엔진과 같이 선수의 타고난 재능과 오랜 기간 쏟아 부은 노력에 ‘플러스 알파’ 효과를 낸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유럽의 축구 강국을 차례로 이기고 4강 진출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스피릿이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체조 역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건 양학선 선수가 스스로 개발한 고난도 신기술을 완벽하게 선보일 수 있었던 것도 양 선수의 스피릿 덕분이었다.

스피릿은 대부분 승리에 대한 강한 열망에서 출발한다. 승리 후 얻게 되는 외적 보상 때문이다. 하지만 외적 보상이 주어지면 스피릿은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스피릿’은 진정한 내적 변화에서 나온다. 단단한 스피릿을 지닌 스포츠 선수는 경쟁자와의 비교에 그치지 않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며 게임의 본질에 천착한다. ‘난 누군가?’ ‘이 경기를 왜 하는가?’ ‘이 경기는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자연히 경기에 임하는 근본적 자세와 관점은 달라진다. 요컨대 스피릿은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

 

재능·노력·스피릿 겸비한 ‘스타’ 늘어나길

우리에게 ‘전설’로 남아 있는 스포츠 영웅들은 모두 특별한 스피릿의 소유자다. 펠레, 베이스 루스, 마이클 조던, 무하마드 알리, 웨인 그레즈키, 잭 니클라우스…. 개인적 성취를 넘어 종목 자체의 지평을 넓힌 이들은 엇비슷한 재능과 성실함을 갖춘 선수들이 오르지 못할 정도로 수준 높은 스피릿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스피릿이 그들을 위대한 선수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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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오로지 경기력(performance)으로 승부해야 하는 스포츠 선수들은 유명해질수록 더 치열한 외줄 타기를 해야 한다. 아무리 잘나가는 스포츠 스타도 경기력이 떨어지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능과 체계적 훈련을 통해 ‘골프 황제’로 군림하던 타이거 우즈가 한순간에 무너진 건 스캔들을 일으키며 스피릿을 잃었기 때문이다. 스피릿은 스포츠 선수들이 외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스포츠 선수의 탁월함은 재능과 노력, 그리고 스피릿의 함수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함수는 종목과 선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스포츠가 ‘각본 없는 드라마’인 건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성취와 좌절, 성공과 실패는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이승우가 재능과 성실함에 스피릿까지 겸비한, 명실상부한 최고 축구 선수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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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준호

서울대학교 스포츠경영학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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