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IS의 테러 행진, 어떻게 봐야 할까

2015/02/17 by 이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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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공격을 취재하기 위해 최근 파리를 다녀왔다. 파리시민들의 반응엔 “자유와 관용(톨레랑스)의 가치가 송두리째 공격 받았다”는 애국적 보호 본능과 함께 “어떤 위협에도 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자유주의적 열정이 넘쳐흘렀다. 9·11 테러 직후 미국 시민들이 보여줬던 애국적 반응을 연상케 한다.

평소 반(反)이슬람적 풍자 만화로 여러 차례 테러 위협에 시달렸고, 주류 언론에서조차 비판 받아온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 공격에 유럽이 이토록 한 목소리로 분개하는 덴 단순히 서구 가치와 언론의 자유가 침해당했다는 위기감 이상이 숨어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을 테러 참사 이후의 일시적 반작용으로 보긴 어렵다. 오히려 그간 억누르고 잠재돼온 ‘이슬람포비아(Islam phobia, 이슬람 국가나 민족에 대한 혐오증)’가 공공연히 표출되는 한편, 유럽 다문화 정책의 폐쇄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어서 우려를 자아낸다. 유럽과 이슬람 간 ‘문화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느낌을 줄 정도다.

프랑스 거리에 사람들이 JE SUIS CHARLIE(나는 사를리다)라는 푯말을 들고 서 있습니다.

물론 이슬람 세계의 반응은 차갑다. 겉으로는 테러를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서구와 프랑스의 반이슬람 정서엔 불쾌감을 강하게 드러낸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발언(“얼마 전 감옥에서 출소한 잠재적 테러 위협 인물들을 활개 치도록 내버려두는 프랑스 안보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테러를 저지른 사람들은 프랑스 시민인데 왜 무슬림이 통째로 비난을 뒤집어 써야 하나?”)이 대표적이다.

이슬람권 시민들의 불만과 아쉬움도 한결같다. “그동안 유럽이 무슬림을 향한 교묘한 인종 차별과 증오적 발언, 이슬람 종교시설에 대한 공격, 이슬람포비아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상황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 “표현의 자유와 종교적 모욕의 자유를 구분하지 못하는 서구에 대한 실망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등이 대표적이다.

 

날로 커지는 유럽 내 ‘이슬람 혐오증’

오늘날 유럽엔 이 지역 총인구의 5%에 육박하는 약 4000만 명의 무슬림이 거주하고 있다. 이슬람교 예배당인 모스크 수도 1만 개에 이르는 등 이슬람화(化)가 급격히 확산되는 추세다. 그래서 최근엔 이슬람포비아를 넘어 ‘유라비아(Eurabia, 유럽의 아랍화)’란 용어까지 등장했다.

특히 프랑스 내 무슬림 숫자는 약 9%대로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 특정 이주민이 10%를 넘으면 인구 급증은 말할 것도 없고 단단한 종교적·민족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캐스팅 보트를 쥐고 주류 사회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최근 유럽 정치는 어느 때보다 우경화 바람이 거세다. 인종주의 문제도 갈수록 강해지는 경향을 보여준다. 대표적 예가 미셸 우엘벡의 책 ‘복종’의 베스트셀러 복귀 현상이다.

현대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인 우엘벡은 이 책에서 “2022년쯤이면 무슬림이 프랑스 대통령에 오르고 여성들은 가정으로 돌아가며 일부다처제가 허용될 것”이라며 무슬림이 득세하는 세상을 과장해 다루고 있다. 톨레랑스의 상징 국가인 프랑스조차 지난 2011년 자국 내 무슬림 여성의 ‘부르카 금지법’ 제정 이후 자국 이민정책을 점차 폐쇄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왜 그들은 함께 살지 못할까.

무슬림 소녀가 기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서구와 이슬람, 1200년간의 트라우마

서구와 이슬람 세계는 장장 1200년간 ‘지배-피지배’의 적의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려 왔다. 711년 아랍 군대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후 1492년까지 거의 800년간 스페인 남부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말타 등도 수백 년간 아랍의 위협에 시달렸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이슬람 세력은 1683년 당시 유럽의 최강국이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심장부 비엔나를 세 차례나 공격했다. 지브롤터가 뜷리는 711년부터 1683년까지 거의 1000년간 기독교 유럽 세계가 이교도 이슬람에 의해 위협 당하고 공포에 떨어야 했던 상황은 쉬이 상상되지 않는다. 이슬람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과 혐오증, 즉 이슬람포비아가 생겨난 역사적 배경이다.

나폴레옹이 그려진 우편 2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정복을 기점으로 힘의 강약이 바뀌면서 이후 200년간 모든 이슬람 세계는 거꾸로 서구의 지배를 받게 된다. 독립을 전후해선 수많은 피식민지 무슬림 이주민이 값싼 임금 노동자 신분으로 유럽 땅을 밟았다. 파키스탄인은 영국으로, 모로코인은 스페인으로, 알제리인은 프랑스로 각각 몰려갔다. 1차 세계대전의 동맹국이었던 터키인 수백만 명은 독일에 자리 잡았다. 결국 유럽의 이슬람화는 유럽발(發) 식민통치의 불행한 후유증이다.

이주민 1세대들은 피해 국민으로서의 역사적 정당성을 주장하며 온갖 모욕과 차별, 종교적 불이익을 감내했다. 적어도 자식에겐 가난을 물려주지 않고, 풍요로운 유럽에서 선택받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꿈과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태어나 그곳 시민으로 성장한 2·3세대들에겐 극복하기 어려운 암초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럽인의 인식에 깊숙이 뿌리 내린 이슬람포비아의 벽이 바로 그것이다.

 

차별과 저항, 그리고 이중 잣대

2009년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유럽 경제가 어려움에 놓이면서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건 이주민들이었다. 피부색과 얼굴 모양, 종교와 독특한 이름 때문에 웬만한 곳에선 일자리가 나지 않았다. 화이트칼라 직업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려웠다. 일도, 꿈도 잃은 채 소외된 젊은 무슬림들은 파리 교외나 변두리의 방황하는 문제아로 전락했다. 프랑스의 경우, 지역 인구의 30%가량이 무슬림인 남부 마르세이유 빈민가는 당국조차 손을 놓은 채 접근을 꺼리는 ‘노고(no-go) 지역’으로 변해버렸다. 그들 중 일부는 ‘외로운 늑대’가 돼 여러 차례 자생적 테러를 저질렀다.

한편, 이슬람 테러 조직이 이들을 포섭하면서 테러 양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혼란 지역에서 IS가 새로운 이슬람 세상을 약속하자, 당장 유럽 무슬림 젊은이 3500명가량이 몰려들었다. 최근엔 일본과 한국 젊은이 일부도 빠져들고 있다. 알카에다와 함께 IS가 새로운 위협 세력으로 등장, 지구촌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각종 무기로 무장한 테러단체 조직원이 총을 하늘로 치켜들고 있습니다.

 

IS, 유럽의 무슬림 청년층 접수하다

IS의 모체는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다. AQI의 전신은 지난 2004년 김선일씨를 포함, 수많은 인질 납치·살해로 악명 높은 아부 마사브 알자르카위의 ‘유일신과 성전단체’다. 2006년 ‘무자히딘 최고회의(MSM)’로 통합된 후 수니파에 대한 시아파 정권의 박해와 차별이 심해지자, ‘이라크 이슬람국가(ISI)’ ‘이라크와 시리아 이슬람국가(ISIS)’로 이름을 바꾸며 테러 활동을 조직화해왔다.

총공격을 통해 이라크 북부 지대와 시리아 영토에서 단단한 군사적 거점을 확보한 지난해 6월 이후엔 아예 조직명을 ‘이슬람국가(IS)’로 부르며 글로벌 테러 조직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정작 심기가 불편해진 건 역설적이게도 알카에다 조직이었다. 글로벌 이슬람 지하드 활동을 놓고 경쟁하던 두 단체는 이슬람을 해석하는 이념 성향에서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일부 전문가는 “알카에다가 IS의 지나친 폭력성과 반인륜적 참수 행위에 반대하며 IS와의 교류를 단절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제 중동에서 IS는 ‘테러와의 전쟁’을 말할 때 새로운 목표가 됐다. IS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반군 내 핵심 세력으로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산유국과 터키 등에서 엄청난 자금과 무기를 지원받아왔다. 중동 전역에 단단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은행 탈취 등을 통해 확보한 20억 달러 상당의 재원 덕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테러 단체’가 됐다. IS는 이 자금으로 이슬람 분쟁 지역에서 가족을 잃은 복수심에 불타는 젊은 용병들을 사들였다. 이라크 감옥을 접수해 죄수들을 강력한 조직원으로 흡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특이한 건 IS가 알하야트 미디어 센터 등을 설립, 첨단 디지털 기법과 유튜브·페이스북 등의 SNS 매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소외감에 시달리던 유럽 내 이슬람 청소년을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3000명 정도로 추산되는 유럽 국적 테러리스트들은 거리낌 없이 참수 명령을 이행하며 미국과 유럽의 선전전에 당당히 맞서고 있다.

 

이슬람·서구, 공동 테러 근절이 ‘답’

테러리즘이 쓰인 푯말을 망치로 깨 부스는 장면입니다.

날로 흉포해지는 IS의 테러 행진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서구사회가 공정한 인식의 잣대를 세워야 한다. 유럽 사회는 그동안 이스라엘 문제와 유대인 피해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적극적 관심을 보였지만 유독 이슬람 이슈에 관해서 만큼은 부정적이고 배타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물론 유럽에서 발생한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원죄의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순 없다. 더욱이 홀로코스트법에 의해 유대인에 대한 비난은 엄정하게 금지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해도 유럽 내 이슬람포비아는 아무런 제동 없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유럽 시민이 된 무슬림 인구를 온전한 시민으로 끌어안으려면 뿌리 깊은 반(反)유대주의, 즉 ‘안티 세미티즘(anti-Semitism)’을 청산하는 한편, 홀로코스트법을 제정한 것처럼 1200년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딛고 유럽과 이슬람이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이슬람포비아 금지법’을 발효할 필요가 있다.

‘이슬람권의 유엔’으로 불리는 OIC(세계이슬람협력기구)와 모스크를 중심으로 한 무슬림 지도층의 각성과 역할 설정도 필요하다. 젊은 무슬림을 향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저항적 투쟁을 고취시키기보다 진정한 종교 교육과 공동체 의식 함양을 통해 그들의 삶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코란과 무함마드에 대한 모욕을 불만스럽게 여길 권리는 있지만 폭력은 결코 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이슬람 극단주의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주류 무슬림이다. 이 사실을 유념한다면 이슬람 세계는 서구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급진 테러리스트에 맞서야 한다. 요컨대 서구의 일방적 대(對)테러 전쟁이 아닌, 서구와 이슬람이 함께하는 테러 근절만이 IS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해결책이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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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삼성전자 전문가 필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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