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어쩌면 꽤 많은 문제의 근원, 자존감

2015/08/06 by 곽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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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칼럼니스트


 

여자가 서있는 이미지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나요?” 다소 뻔한 질문을 받아 들고 ‘사람답게 사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언젠가 한 대학교에 강연을 갔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지금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여섯 달째 절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고백은 제가 먼저 했죠. 그런데 그는 저랑 달콤하게 ‘썸’ 타는 듯하다 연락을 뚝 끊어버립니다. 그러다 별안간 술 마시고 전화해 제 맘을 흔들어요. 이게 소위 ‘어장 관리’란 걸 모르지 않지만 그 사람을 거부할 순 없어요. 어떻게든 선택 받고 싶거든요. 전 어떻게 하면 될까요?”

반 년 가까이 자신을 헷갈리게 만드는 이성의 진심을 알고 싶어 용기를 낸 그 학생에게 난 갖가지 ‘남심(男心) 공략법’을 일러줄 수도, ‘유혹의 테크닉’을 소개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 편이 훨씬 실용적 답변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썸남 공략법’이 필요한 듯 보이는 그 사연이 실은 ‘자존감’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썸남’의 희망고문, 당신의 선택은?

살다보면 누구나 매력적인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그 와중에 선뜻 한 사람을 선택하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잘 모르는 내 마음’을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간이 6개월에 이른다면 얘긴 달라진다. 사연 속 ‘그’의 행동은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연애의 권력 게임에서 우위를 차지한 쪽이 그렇지 않은 쪽을 향해 계속하는 ‘희망고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고민하는 여자 일러스트 이미지

그럴 땐 당하는 쪽에서 자문자답해봐야 한다. ‘내 마음에 대해 확답을 주지도 않으면서 반 년째 희망고문만 하는 사람에게 난 어떻게 해야 좋을까?’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희망고문이든 뭐든 좋으니 이 사람의 선택을 받을 때까지 기다릴 거야. 언젠가 그도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좀 다른 결론을 내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예스(yes)냐 노(no)냐 답하지 않은 채 하염없이 기다리게만 하는 건 상대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거야. 내가 그 사람 타입은 아닐지 몰라도 이런 취급 받을 이유는 없어. 난 단점이 많지만 사랑 받을 자격도 충분한 사람이니까!’ 물론 둘 중 ‘자존감 있는 쪽’의 결정은 두말 할 것 없이 후자다. 상대방 의사를 존중하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 받을 ‘내 권리’ 역시 잊지 않는 태도 말이다.

자존감을 지키려 애쓰는 힘이 비단 연애 상황에서만 요구되는 건 아니다. 전후 상황은 알아보지도 않은 채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상사 앞에서, 나이를 앞세워 ‘내가 연장자이니 무조건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 앞에서, 정당한 노동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고용주 앞에서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그 말은 곧 부당한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단단한 자존감 없인 자신을 지킬 수도,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정을 내릴 수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베스트셀러, 포털 뉴스와 이별하기

많은 20대 친구들이 묻는다.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어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 그들이 원하는 정답과 문제 풀이 과정이 쓰인 페이지를 열어 보여야만 할 것 같아 난감하다. 사고하는 능력은 가로막힌 채 오직 지식 습득에만 치중해온 이가 어느 날 갑자기 자존감을 갖게 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10대를 지나 20대 초반이 되도록 ‘어떻게 생각할 건가’의 문제보다 ‘어떤 게 정답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훈련 받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남은 인생을 인간답게 영위하려면 20대 중∙후반을, 30대와 40대를 거치며 이전보다 훨씬 많은 수업료를 더 지불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추가 수업료’를 어디에 내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숭숭 뚫린 생각의 구멍을 채우며 바닥까지 내려간 자존감을 차곡차곡 쌓아 올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최적의 해답은 ‘주어지는 지식’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지식’을 늘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체험 속에서 자신을 또렷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책 보고 있는 여자

이를테면 책 한 권을 고르더라도 남이 다 보는 베스트셀러 대신 자신이 지금 가장 갈증 느끼는 분야, 흥미 생기는 분야를 택할 필요가 있다. 그 안에서 지식을 탐구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이 좀 더 또렷하게 보일 뿐 아니라 본인 생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모바일 인터넷 포털 ‘뉴스’ 카테고리에 편집돼 보이는 기사 몇 개 읽고선 ‘신문 읽었다’ 생각하는 대신 다양한 매체를 적극적으로 구독한 후 해당 매체에 수록된 기사를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도 필요하다. 대학마저 교육다운 교육을 포기한 채 학생 줄 세우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그저 좋은 학점을 따는 것’만으론 자신을 제대로 성장시킬 수 없다.

 

좋은 인맥의 잣대는 ‘쓸모’ 아닌 ‘의미’

또 하나 중요한 건 평생 함께 갈 수 있을 만큼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사람을 잘 만난다’는 말이 ‘인맥 관리’란 용어로 포장되기 시작했다. ‘쓸모 있는 사람과 교류하며 일에 도움 받는 것’이 곧 ‘아는 사람 많은 것’과 동의어인 듯 여겨지는 풍토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자존감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그런 ‘빤한 인맥’이 아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가치관이 비슷해 아무런 대가 없이도 웃음과 눈물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가까이 두는 게 진정한 인맥이다. 그런 사람은 살면서 어떤 일을 마주하든 좋은 버팀목이 돼준다.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을 비난한다 해도 ‘옳다고 믿어온 것’이 비슷한 이들의 지지가 있다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두 사람이 함께 차마시는 모습

하지만 그 전에 기억해야 할 게 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가려면 당신 역시 그들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그저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에게) 유의미한 사람’이 되려면 적잖은 가치를 지켜야 한다. 열린 태도로 대화하기, 기본적 예의 지키기, 상대 입장에 공감할 줄 알기…. 하나같이 기본적이지만 오래 지키긴 어려운 원칙들이다. 기억할 것. 좋은 시절을 오랫동안 함께 보낼 사람은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는 법이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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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정은

㈜왓츠넥스트 대표 (삼성전자 에세이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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