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에세이] 좋아하는 클래식 공연장 있으세요?

2015/08/27 by 박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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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모로우 에세이] 좋아하는 클래식 공연장 있으세요? 여러분의 취향에 맛과 멋을 더해줄 에세이스트 8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매주 목,금요일 투모로우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박제성 음악평론가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두말할 것 없이 음악을 만드는 주체인 연주가, 그리고 그 음악을 탄생시킨 작곡가다. 하지만 ‘종이에 기록된 음표’나 ‘음악가 머릿속에 들어있는 상태’ 자체를 음악이라고 명명하긴 어렵다. 음파(音波) 형태로 울려 나와 청중에게 전달돼야 비로소 음악으로서의 생명력을 얻는다.

음악은 파동에 의해 그 성질이 결정되는 만큼 반사∙흡음∙분산∙확산을 위한 전용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의 ‘음향 용적률’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재질을 갖추는 일도 중요하다. 무대에서 상연될 음악 장르에 따라 내부 콘셉트 또한 천차만별이다.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는 구조주의자들 얘기처럼 음악 또한 악보나 음악가에 우선해 공간 자체가 규정 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때로 악보나 연주자보다 중요한 ‘공간’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음악이나 극, 제례 등 음악이 필요한 예술 장르를 ‘마당’으로 통용되는 열린 공간에서 수용해왔다. 하지만 서양에서 공연 예술이 소비되는 공간은 그리스시대 원형극장에서 출발해 종교의례는 천장이 높은 교회를 중심으로, 소규모 실내악은 ‘디테일(detail)’이 살아나는 살롱을 중심으로,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는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를 중심으로 각각 소비됐다. 하나같이 닫힌 공간이었다. 그런 까닭에 음악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제각기 다른 용도의 홀(hall)이 필요하게 됐고, 이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며 음악은 상업적∙예술적 발전을 이뤄왔다.

3000석 규모의 콘서트홀에서 바이올린 독주회가 열렸을 때 청중은 그 소릴 제대로 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소규모 중창단이 오페라홀에서 공연할 때 과연 그들의 발음은 객석에 제대로 전달될까? 반대로 100명 이상의 오케스트라가 1000석이 채 안 되는 홀에서 연주한다면 그 소린 한낱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할 것이다. 

이처럼 콘서트홀은 제각기 그 특성이 다르므로 용도에 따라 전문화된 설계 작업이 우선시되지 않는다면 그곳에서 연주되는 음악의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장르별 음악 연주에 최적화된 ‘전용 홀’이 필요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다양한 전용 홀을 구비하는 건 그 나라의 음악 문화를 발전시키고 전통과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본 토대이기도 하다.


빈필하모닉 사운드 완성시킨 건 ‘황금홀’

한국은 근대에 접어들며 비로소 실내 공연 문화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강당이나 회관을 중심으로 공연이 이뤄졌다. 1970년대 들어 비로소 연극 전용 공간(국립극장)과 음악 전용 공간(세종문화회관)이 건립됐다. 하지만 너무 넓은 데다 다목적 홀로 지어진 만큼 모든 장르의 음악을 적절하게 수용하는 덴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 1988년 ‘음악 전용 콘서트홀’을 갖춘 예술의전당이 문을 열며 본격적 ‘음악 전용 홀 시대’의 막이 올랐다. 이후 IBK쳄버홀과 리사이틀홀까지 개관, 소규모 음악 전용 홀도 마련됐다. 1990년대 이후 경기도엔 성남아트센터과 고양아람누리가 각각 생겨 클래식 음악 전용 홀로서의 생명력을 이어갔다. 최근엔 통영국제음악당(경남 통영)과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경기 용인)이 개관하며 지방에서도 ‘클래식 전용 홀 시대’가 열리게 됐다.

오케스트라 콘서트홀의 모습입니다.

오케스트라 입장에서도 콘서트홀은 연주 사운드와 스타일에 정체성을 불어넣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세계 최고 수준의 빈 필하모닉도 그 사운드는 빈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 황금홀의 특성에서 완성됐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현대적 사운드 역시 1960년대 신축된 필하모니홀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밤베르크 카일베르트홀 △함부르크 엘베필하모니홀(2017년 완공 예정, 이상 독일) △도쿄 산토리홀(일본)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II(러시아) 등 이미 지어졌거나 지어질 예정인 클래식 음악 홀은 모두 해당 지역 상주 악단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와 동시에 한 국가나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제2∙제3의 예술의전당’ 탄생을 기대하며

한국에도 지방 대도시마다 오케스트라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자신만의 프로그램과 리허설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전용 홀을 갖추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집이 있어야 안주인의 인테리어 솜씨가 발휘되듯 홀 특성에 맞춰 오케스트라 음향 또한 조율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현실은 이 같은 사정을 외면해온 게 사실이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습니다.

시대가 발전하면 도로도 그 폭과 노선을 확장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국내외 공연 단체가 급속도로 늘어난 서울을 예로 들면 예술의전당은 이미 그 수용 능력이 한계에 이르렀다. 내년 롯데콘서트홀(제2롯데월드 내)이 개관하면 홀 부족 현상이 다소 해결될 전망이지만 정작 세계를 향해 도약 중인 서울시교향악단은 여전히 전용 홀 문제를 쉽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그나마 서울은 2000석 이상 규모의 오케스트라 전용 홀을 두 개 갖추게 됐지만 챔버 오케스트라 공연에 적합한 1000석 규모 전용 홀은 아직 전무한 상태다. 독주와 실내악 연주에 어울리는 전용 홀 또한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콘서트홀에서 공연이 이루어지는 모습입니다.

지방으로 가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일부는 “관객 수요가 많지 않으므로 아직 전용 홀을 지을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틀린 지적이다. 오케스트라는 홀에 맞춰 제대로 튜닝된 사운드와 음악적 목표를 찾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비로소 그 상품성과 경쟁력, 완성도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통영 국제음악당과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은 시향급 오케스트라가 상주하지 않는데도 자체 기획으로 서서히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고양∙성남시 소재 콘서트홀은 상주 오케스트라의 수준과 지원이 미약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행히 최근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재개관한 대구시민회관은 대구시교향악단이 상주하며 자체 기량과 정체성을 갖춰나가고 있다.

지휘자가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콘서트홀은 ‘오케스트라의 집’이란 점에서 중요하지만 그 도시를 대표하는 관광 중심지 역할을 겸한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과 미국은 물론, 가까운 일본(도쿄)만 해도 다양한 전용 홀들이 제각기 아름다운 자태와 음악적 권위를 뽐내며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오케스트라 각축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중국 또한 콘서트홀 신축 작업 물량을 늘리며 ‘세계 음악 중심지’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자체 기획 중심으로 운영되는 클래식 콘서트 전용 홀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잘 조성된 전용 홀은 시민들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문화적 자부심과 예술적 만족감을 부여할 뿐 아니라 해당 도시의 랜드마크이자 문화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은 오케스트라 전반의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 이 칼럼은 전문가 필진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필자의 또 다른 에세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투모로우 에세이] 지금, 한국 오케스트라는 진화 중!

by 박제성

음악평론가 (삼성전자 에세이 필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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