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아직 가슴(?)이 없다

201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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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던’ 7세대-LCD 로봇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크기뿐만아니라 기술적으로도 경쟁업체가 따라오지 못할 7세대 로봇이어야 합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로봇! 규모는 2.5톤 LCD 로봇이...지금보다 더 커질수가 잆다구요? 개발팀원들이 로봇개발에 경험이 없다는게 더 충격이에요

2003년 설을 앞둔 어느 날 오후, 최용원 수석을 비롯한 생산기술연구소 로봇팀은 김동일 상무에게서 또 다시 긴급호출을 받았다. 이날 하루만 벌써 세 번째 소집되는 회의였다.

“지금 우리가 개발하려고 하는 7세대 로봇은 규모가 2.5톤이나 됩니다. 5세대 400kg짜리 로봇을 크기만 조금 더 키운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기왕 기술을 선도하려면 일본 경쟁업체들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앞서가야 합니다.”
2년 전, 5세대 LCD라인에 투입된 로봇을 개발할 때만 해도 연구원들은 ‘이보다 더커질 수는 없으리라’고 믿었다. 그랬건만 LCD 생산은 가파른 속도로 6세대를 뛰어넘어 7세대로 진화해버렸다.
5세대 때 가로·세로 1미터 남짓(1100×1250mm)이었던 유리 기판의 크기는 7세대에서는 2미터 전후(1870×2200mm)로 커졌다. 면적으로는 3배가 커진 셈이다.
초대형 LCD패널과 접촉면적을 더 줄이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반복하는 기술특성을 실현시켜야 합니다. LCD 원판 글라스 진동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로봇관절에 센서를 부착해 글라스 가장자리를 정확히 인식..

삼성전자가 7세대 LCD라인을 세계 최초로 가동한다는 것은 로봇팀에게는 그 생산라인에 투입할 로봇을 앞서 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무렵 연구원들은 다음 세대 로봇에 관한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선진업체와 기술 격차를 많이 좁히기는 했으나 로봇의 핵심 분야를 여전히 일본에서 수입하는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초대형 LCD패널과 접촉면적을 더 줄이면서도 신속하고 반복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동역학제어 기술을 실현시키지 못한다면 모든 시도가 허사인 것을 연구원들은 잘 알고 있었다.

“로봇이 반드시 수평으로 누워야 한다는 법은 없잖습니까. 로봇을 상하로 세워 키워보면 어떨까요?”

한 연구원이 다소 엉뚱하게 들리는 아이디어를 꺼냈다.

“아시다시피 LCD 생산 공장에는 ‘카세트’라는 글라스 운반 장비가 있습니다. 로봇은 이 카세트에서 원판글라스를 낱장으로 빼내어 LCD 가공장비에 넣어 작업한 후 다시 꺼내 다음 공정으로 보내지요. 자, 여기를 봐주십시오. 이 카세트를 지금처럼 수평으로 쌓지 않고 이렇게 수직으로 높게 이용한다면 어떨까요? 우선 카세트 이동시의 안정성이 확보될 겁니다. 주변 사물과 부딪칠 기회가 줄어드니까요. 한편으로는 카세트가 있어야 할 공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니 라인 활용도가 높아지고 공사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는 말투가 조금 어눌한 듯했지만 묘하게 사람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얼마나,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집중되었다. 당시 LCD 생산라인에서 활약하는 로봇이 한 번 오르내리는 Z축 높이는 850mm인데, 7세대 환경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Z축 높이가 3.6m까지 올라가야 했다.

 “평소에 팔이 접혀 있다가 필요하면 늘어나는 형태가 되겠군.”

듣고 있던 김동일 상무가 로봇 골격을 간단하게 정리해둔다.

7세대 로봇팀은 이전에 LCD 로봇 개발에 경험이 없는 사람들로 구성했다.
‘세상에 없던’ 로봇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두고 연구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 로봇 개념을 버린 전혀 다른 창의적 아이디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출발한 7세대 로봇팀은 구성원이 사내경력, 소속, 전공이 천차만별로 다양했다. 이들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로봇을 위해 갖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외부 특징은 3.6m 높이로 작업할 때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로봇 동작 영역의 양쪽에 기둥을 설치하는 ‘듀얼 포스트’ 형식을 취한 점이지만, 삼성전자의 로봇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핵심기술은 LCD원판글라스 진동을 최소화하는 ‘동역학제어기술’이다.

7세대 원판글라스는 긴 쪽 폭이 2m가 넘는데 두께는 겨우 0.7mm에 불과하다. 이조건은 로봇이 작업하는 동안 글라스가 미세하게 흔들려도 로봇의 정확도가 어긋나거나 글라스가 파손된다는 점을 환기한다. 그러므로 LCD글라스 핸들링의 핵심은 진동 최소화에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조필주 책임연구원이 ‘T-얼라인 센서’를 고안해냈다. 로봇 관절에 글라스의 가장자리를 감지하는 센서를 부착해 로봇이 글라스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개발에 주어진 시간은 단지 6개월이지만, 연구원들은 짧다면 짧은 기간을 염려하지 않고 묵묵히 작업을 이어갔다. 마침내 프로토 타입 4종 중에서 듀얼 포스트 방식의 ‘T71’이 최종 낙점되기까지 작업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었다. 실제 운행할 때 예기치 않은 오작동이 발생할 가능성을 사전에 철저하게 점검하여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음’ 문제만 해도 그랬다. 연구원들은 로봇을 시운전하면서 묘한 소리를 들었다.

로봇이 시계방향으로 회전할 때는 괜찮은데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할 때 쇠가 긁히는 소리가 발생했던 것이다. 기어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살펴보니 예상대로 기어 한쪽 면의 연마 상태가 고르지 않았다. 소음의 원인을 알아내고 대책을 강구한 시각이 밤 10시. 완벽을 추구하는 연구원들의 열정은 개발 기간의 마지막 밤조차 스스로에게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팔이 아름다운 로봇, <T71>

인스톨 큐 사인이 떨어졌다.

키가 3.6m나 되는 거대한 ‘미녀’ <T71>이 처음으로 눈을 뜨더니 잠을 떨어내려는 듯 미끈한 팔을 빼 허공에 휘저으며 몸부터 풀었다. 로봇팀연구원들 눈에는 이제 막 세상에 데뷔한 이 미녀가 앞으로 제 구실을 다할지 걱정이 앞선다. 로테이션 속도를 20으로 올리니 팔 움직임이 조금 더 민첩해졌다. 베이스가 든든하고 몸집이 커서 미덥기는 한데 속도를 더 높일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몰라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위험하니까 저만큼 물러나고, 속도를 5 정도 더 올려봐!”

미녀 탄생을 주도한 연구원들 속이 얼마나 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참관자들의 눈길은 여전히 덤덤하다. T71의 팔놀림이 더 잽싸지면 1870×2200mm 크기의 유리기판 낱장들이 밀려오는 속도가 더 빨라지겠지만, 아직은 어림없다. 로테이션 속도가 100까지는 올라야 한다.

이윽고 속도가 80을 넘고 90을 넘기면서 이 미녀의 숨소리가 자리를 잡고 차분해진다. 연구원들은 지난 6개월 동안 노심초사하며 다잡았던 마음이 인스톨 후 불과 몇 분 사이에 다 타버리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양산에 들어가도 좋습니다.”

마침내 오케이 판정이 내려졌다. 갈증 속에서 사막을 헤매던 유목민이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가웠다. 재만 남은 가슴에 단비가 내리는 듯하다.

“되네?”

LCD쪽 참관자가 처음부터 쭉 지켜보고 마지막에 툭 던진 무심한 한마디가 연구원들 정신을 현실로 돌려놨다. 삼성전자가 7세대 LCD 로봇 ‘T71’의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연구원들이 쏟은 땀에 대한 평가는 그 한마디로 족했다. 연구원들은 당장에 잠이 필요했다.

삼성전자가 산업용 로봇 분야에 주목하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은 급속한 산업발전에 따른 생산자동화 필요성이 매우 절실하게 부각되던 시기였다. 삼성전자도 이 추세에 적극 대응하여 1988년에 생산자동화 실현 전략의 일환으로 김동일 과장을 중심으로 로봇 TF팀을 설치했다.

로봇 TF팀은 1989년 8월, 독자기술로 산업용 로봇의 핵심부품인 컨트롤러 개발에 성공하면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규모 스카라 로봇을 내놓았다. 그 기세를 몰아 2년 후인 1991년, 6축 수직다관절 로봇 개발에 성공하고, 이 로봇을 곧바로 삼성전자 수원공장 VCR데크 조립라인에 적용함으로써 100% 무인화에 성공하며 처음으로 완전자동화의 숙원을 풀었다.

이로써 VCR 조립라인의 생산성은 5배나 훌쩍 뛰어오르고, 불량률은 이전에 비해 절반이 넘게 감소하면서도 원가 절감률은 20%를 웃도는 효과를 달성했다. 공장 안에서 로봇만 움직이는 가전제품 생산라인은 이후에 외국 수반과 같은 국빈급 인사들이 방문하는 명소로서도 제 몫을 다했다.

로봇 개발은 일단 시동이 걸리자 연이어 굵직한 성과물을 쏟아냈다. 중량물 이동용 펠레타이징 로봇, 고속 다기능 실장 로봇, 아크 용접용 6축 다관절 로봇 등을 연이어 개발한 데 이어 반도체 중흥기가 도래하는 1993년에 8인치 웨이퍼에 사용되는 스피너용 로봇을 개발하여 제조라인에 투입했다.

이렇게 1989년부터 시작한 삼성전자의 산업용 로봇 생산은 10년 만인 1999년에 이르러 5,000대 생산을 돌파했다. 연평균 500대 이상 산업용 로봇을 생산할 능력이라면 물량 면에서는 외국 선진업체와 대등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로봇 TF팀이 가야할 길은 멀었다. 물량에서는 선진업체를 따라잡았지만 신뢰성 평가에서는 외산 로봇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2004년 7세대 LCD분야에서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T71’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삼성전자는 LCD분야 세계 1위로 등극하는 데 가장 확실한 밑바탕이 된 이 ‘T71’로봇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외국 선진업체를 넘어섰다는 자신감을 얻고, 이후 앞서가는 자리에서 더 큰 힘으로 박차를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클린능력이 튜닝능력을 만나다
“삼성전자의 산업용 로봇에는 삼성이 축적한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삼성전자의 산업용 로봇엔 삼성의 모든게 들어있어요. 로봇에 관한 기반기술과 관련분야의 조율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생산라인을 꾸밀때 필요조건에 맞추어 로봇을 맞춤제작할 수 있죠

이런 튜닝능력이 맞춤형 경쟁력 이라면... 미세먼지 발생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클린능력은 청정형 경쟁력. 클린클래스1 달성!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7세대 로봇은 자체탑재한 기능 못지 않게 설계단계부터 생산라인 프로세스를 고려한 튜닝작업으로 주목을 끌었다. 이는 산업용 로봇이 생산라인과 밀접하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당연한 시도였다. 김동일 상무가 단언한 ‘모든 것’이란 바로 튜닝능력을 가리킨다.

예컨대 A공정에서는 속도가 100이면 족했지만, B공정에서는 속도가 130이어야 할 요구사항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개별 요구사항이 환경과 조건에 맞게 조화를 이루는 상태가 바로 공장 최적화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각 분야의 역량 총합이 바로 로봇의 경쟁력을 규정하는 튜닝능력인 것이다.

“일본 로봇업체들은 그동안 각 공정의 프로세스 조건에 신경을 쓰지 않고 정형화된 로봇만 만들어 왔지요. 공장의 생산시스템을 최적화하는 로봇이 아니라 어떤 한정된 기능을 미리 부여한 일반 로봇을 개발해온 겁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로봇에 관한 기반기술과 함께 관련 분야의 조율능력을 모두 보유하고 있으므로 생산라인을 꾸밀 때 필요조건에 맞춰 로봇을 맞춤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튜닝능력이 기능·성능상의 맞춤형 경쟁력이라면 다른 한편으로 라인 내 미세먼지 발생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클린능력은 청정형 경쟁력이다.
“아무리 쇠로 된 기계지만 그 큰 녀석이 움직이다보면 아주 작은 먼지가 한 톨이라도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클린능력은 아주 사소한 먼지조차 달라붙지 않도록 처치하거나 발생을 예방하는 능력입니다.”

초대형 7세대 LCD라인에 투입되는 유리 기판은 면적이 5세대의 3배나 된다. 이를 다루는 7세대 로봇은 이전세대 로봇에 비해 몸집도 동작도 커졌으므로 먼지 발생율도 그 만큼 높아졌다. 이 변화는 기판에 ‘파티클(미세 먼지)’이 달라붙을 확률이 더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TV 패널에 파티클이 하나라도 붙으면 여지없이 불량이므로 이렇게 까다로운 클린 사양을 만족시키는 로봇이어야 한다는 점은 초대형 LCD로봇 개발에서 난제에 속한다.

이런 조건에서도 7세대 로봇팀은 자체에서 파티클 카운트에 가혹 조건을 고수함으로써 결국 ‘클린클래스 1’을 달성하며 클린 룸의 청정도를 높였다. ‘클린클래스 1’이란 1입방피트의 공기 속에 머리카락 굵기 1,000분의 1 정도의 먼지가 하나만 존재하는 수준으로, 비유하자면 여의도 6배 면적에 동전 1개 넓이의 먼지만 허용되는 조건이다.
이게 바로 삼성전자 산업로못 171 이군요! 굉장하네요~ 171도입 후 LCD 라인 생산이 월 평균 20만대를 넘어섰고, 생산개시 17개월 만에 1천만대 생산을 달성했습니다.
‘T71’은 이 같은 혹독한 클린 조건을 충족시키며 탄생했다.
삼성전자의 7세대 LCD생산라인 하나에는 로봇이 1600대가 투입됐는데, 그 중에서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7세대 로봇이 800대 가량이다. 개발, 유지, 보수, 튜닝을 삼성전자 자체에서 해결하게 되어 외산과 비교하여 투자비 절감효과만 150억 원에 달하며, 여기에 로봇의 개조·개선을 통한 생산성 향상까지 고려한다면 그 기여도는 5~7배 규모로 더 확대된다.

당초 월평균 8만 매 생산을 목표로 잡았던 LCD라인의 생산성은 ‘T71’도입 후에 월평균 20만 매를 넘어서면서 생산개시 17개월 만에 1천만 매 생산 달성의 개가를 올렸다.

이렇듯 7세대 LCD 로봇이 대형 TV시장에서 ‘킬러앱’으로 등극하여 삼성전자가 40인치급 이상 LCD의 표준화를 선점하던 무렵, 한국을 방문한 각국 정상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또 다른 로봇이 있었다. 삼성전자와 KIST가 공동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마루2>다.


by 삼성전자 블로그 운영자 블루미

흥미진진한 로봇 이야기 어떠셨나요?
다음 번엔 로봇 2편이 찾아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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