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휴머노이드 로봇 마루2의 탄생

201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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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부산전시컨벤션센터(BEXCO).
2005년 11월 부산 APEC 세상에! 한국의 로봇이 춤까지 춥니까? 전혀 새로운것에 대한 무모함에 열정과 노력이 더 해진 결과죠. 네 우린 계속 해낼겁니다.


IT전시관 입구에서 21개국 정상들을 맞이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불현듯 나타난 인간형 로봇 <마루2>가 아리랑 가락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자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느닷없는 상황과 맞닥뜨린 이 장면을 취재하고자 순식간에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이를 지켜보던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로봇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들썩이며 흥을 돋웠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음악이 끝난 후 로봇에게 악수를 청하며 익살을 부렸다. 노무현 대통령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도 엄숙한 분위기를 잠시 잊은 채, <마루2>의 활약을 만족스러운 눈길로 지켜보았다.
“이 로봇이 삼성에서 만든 것입니까?”
참석한 정상 중 한 명이 로봇의 가슴에 선명하게 새겨진 ‘삼성’로고를 보고 경탄 섞인 질문을 던졌다. 각국 정상들은 ‘한국의 로봇기술이 이렇게 발전한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IT강국 코리아’를 세계에 알리는 데에 이보다 더 효과적인 퍼포먼스는 없었다. 국책과제였던 APEC에서의 로봇 시연은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달리 멀찌감치에서 이를 지켜보며 내내 가슴 졸이던 이들이 있었다. 삼성전자 휴머노이드 로봇팀 연구원들이다. 각국 정상들이 입장하기 전 리허설 중에 시연 로봇 하나가 연기를 내며 동작을 멈춰버린 일은 정말이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다른 로봇이 시연 무대에 올라가 임무를 훌륭하게 마치기는 했지만, 로봇팀 연구원들은 또 다른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그동안 참 높은 산을 넘어왔다. 며칠 전 <마루2> 둘을 데리고 부산으로 출발할 때만 해도 연구원들 마음은 가벼웠다.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난상태 였으므로 저녁쯤에는 해운대에 달려가 바닷바람이라도 쐴 요량이었다. 그런데 부산 전시컨벤션센터에 도착해서 로봇 커버를 열어보니 배선들이 마구 엉켜 있었다. ‘갓태어난’ <마루2>들에게는 수원에서 부산까지 여행도 무리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해보지 못했다.

“어, 이게 웬일이냐! 간단하지는 않겠는데?”

로봇 내부를 살펴보는 작업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먼지투성이 작업복을 입은 로봇 박사들이 바닥에 누워 뒹굴다보면 상대가 첨단기술이 집약된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사실을 보통 사람은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 모습이 너무나 흔한 장면이라서 관심을 끌지도 못한다. 연구원들은 부산에 도착해서부터 이 작업으로 며칠 밤을 샜고, 어떤 연구원은 그 피로감으로 코피를 터뜨리기도 했다.


시연 준비를 시작한 것은 한 해 전인 2004년 4월이다. 당시 지능형 차량시스템, 수술용 보조 로봇, 스마트 인풋 디바이스, 바이오토메이션 등 지능형 로봇 연구에 매진하고 있던 기반기술팀 전체를 들썩이게 하는 특명이 떨어졌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휴머노이드 로봇 마루2와 아라2를 개발해 주십시오. 삼성과 KIST에 1년의 시간을 드릴겁니다. 네?! 1년 안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요?


“대한민국을 대표할 휴머노이드 로봇 ‘마루2’와 ‘아라2’를 개발해주십시오. KIST와 삼성전자에 동일하게 1년의 시간을 주겠습니다. 1년 후 각사가 개발한 것을 비교하여 더 진보한 로봇을 2005년 부산에서 열리는 APEC에서 소개할 것입니다.”

정보통신부가 ‘특별추진위원회’까지 구성해 직접 참여할 만큼 큰 관심을 보였지만 삼성전자의 지능형 로봇 연구팀을 이끌고 있던 노경식 수석은 그 사실을 전해 듣고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로봇은 여러 공학 분야가 어울려 빚어내는 종합 결정체다. 기계, 전기, 반도체, 네트워크 등 관련 전문기술이 서로 빈틈없이 맞물려야 비로소 로봇이 움직인다.

휴머노이드 로봇 안에는 보통은 관절 32개가 들어가는데, 이 중 하나만 잘못돼도 로봇은 제멋대로 움직인다. 또, 로봇에 들어있는 보드는 약 80장이고 IC 하나에 달려 있는 전선 연결부만 쳐도 약 300개에 달한다. 이 깨알 같은 IC 중 어느 한 군데만 부실해도 로봇은 말을 듣지 않는다. 동작 중에 우연히 하드웨어 틈새로 전선이 끼이거나, 자주 사용하는 관절에 연결 전선이 끊어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 로봇 전문가는 로봇연구란 기술 싸움이 아니라 지구력 싸움이라고 갈파했던 것이다로봇은 여러 공학 분야의 종합 결정체 잖아요? 관련기술이 서로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야 할텐데... 기술싸움이 아니라 지구력 싸움이란 말이 괜히있나요? 그래도 해봅시다. 우리나라를 대표할 로봇이니...우리말고 누가 합니까
하지만 삼성전자가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에 본격 뛰어든 것은 2002년. 일본의 혼다가 20년 연구 끝에 2001년 ‘아시모’를 발표하며 세계를 놀라게 한 것보다도 늦은 시작이었다. 제대로 보행하는 로봇을 만드는 것만도 벅찬데 1년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어 내리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할 로봇을 만든다는데, 삼성이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필경에 노경식 수석은 마음을 다잡았다. 난감해하던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동료들의 우직한 한마디였다. 목표에 공감하자 도전의식은 오히려 더욱 강해졌다. 연구진은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 2005년 4월 독자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KIST와 나란히 공개할 수 있었다.

처음 시연회에서 얼굴이 굳어진 쪽은 삼성전자직원들이었다. 마루1의 창시자였던 KIST의 휴머노이드 로봇기술은 기대 이상으로 월등했고, 결과는 삼성전자의 참패였다. 전혀 새로운 로봇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에는 주어진 시간과 경험이 턱없이 모자랐던 탓이다.이번 첫 시연회 결과를 보니 삼성전자는 로봇 기술이 허술한 것 같군요 KIST가 만든 것을 양산하는게... 그럴 수 없습니다! 기필코 해내겠어.
“삼성전자는 로봇기술이 허술하니 KIST가 만든 것을 양산하는 게 어떻습니까?”

굴욕적인 상황이었지만 이를 받아들일 만큼 삼성전자 연구원들의 자존심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다시 도전해보겠습니다.”

APEC이 열리는 2005년 11월을 겨냥하여 두 번째 시연회는 9월로 잡혔다. 다시 6개월 동안 4대를 더 만들어야 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 9명이 모여서, 더구나 ‘전혀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로 마음을 모았으니 어찌 보면 무모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이 무모함은 밤을 새우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날이 될 만큼의 열정과 노력이 뒷받침되면서 의외의 성과를 내고 있었다.

외형 디자인, 설꼐 내부 전자부품... 모두 전면 재 검토 합니다. 남은기간은 6개월! 몰랐던 분야이긴하지만 그 만큼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연구진은 로봇의 외형 디자인부터 설계, 내부 전자부품 등 모든 것을 전면 재검토하며 공을 들였다. 6개월 후, 삼성전자가 다시 내놓은 로봇을 보고 이번에 놀란 쪽은 KIST였다. KIST의 로봇과 비교해도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이제 로봇 플랫폼(몸체)은 삼성전자에서 전담하는 게 좋겠습니다.”


수년간의 연구를 불과 몇 개월 만에 따라잡은, 대한민국에서는 불모지에 가까운 로봇 연구의 외길을 걷고 있는 동료의 노고에 대한 KIST 측의 경탄이었다. 이는 삼성전자 로봇기술력이 2005년 APEC 정상회의의 시연을 계기로, 수십 년을 앞선 KIST와 동등한 위상을 갖게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이 국책과제 과정에서 취득한 로봇 관련 특허만 60여 건이다.

로봇에 관해 총 80여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 업체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2006년 이후에는 개발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접근해나갔다. 우선 그동안 개발과정에서 짚어낸 문제점들을 도출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에 역점을 두어, 1년 반 남짓 되는 기간에 98%가량 대안을 찾았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마루3>을 만들었는데, 이전 <마루2>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향상됐다. 예를 들어 <마루2>는 시연하기 30분 전부터 너댓 명이 달라붙어 시연 준비를 해야 했지만, <마루3>은 한 사람이 5분 전에 가서 프로그램을 진행해도 충분할 정도다.


미래학자들은 혈관이나 뇌신경세포에 들어갈 나노로봇이 등장하는 2020년 무렵에는 세계 로봇시장 규모가 5000억 달러로 커져 자동차 시장을 능가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또, 세계적인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2023년에는 임계(臨界)를 초월한 인공지능 로봇이 상용화되고, 2045년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는 확신에 찬 전망을 내놓았다. 그리 먼 미래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로봇생산 세계 5위, 사용 대수 4위, 로봇 밀도 2위로 미국·일본 등 세계 로봇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by 삼성전자 블로그 운영자 블루미

다음번엔 와이브로가 탄생하기까지의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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